열차 전면 중단 - 승객들 지상 대피, 방폭망 두르고 폭발 유도… 불발
가방 여니 철제 옷걸이 - 옷 와르르

지하철 분당선 강남구청역 박모 역장(54)은 17일 오후 2시 2분경 역내 비상벨을 통해 한 승객으로부터 가슴 철렁해지는 신고를 받았다. 지하 5층에 위치한 왕십리 방면 ‘4-3’ 승강장에 폭발물로 의심되는 가방이 있다는 것이었다. 플라스틱 재질에 높이 53cm, 폭 58cm, 두께 30cm짜리 검은색 여행 가방이었다. 박 역장은 승강장의 목재의자 옆에 가방이 놓인 걸 확인한 직후 “가방 속 물건을 확인해 달라”고 경찰에 신고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정확한 감식을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에 경찰특공대 폭발물처리반(EOD) 지원을 요청하고 오후 2시 30분부터는 분당선 열차를 무정차 통과시켰다. 혹시 모를 폭발 사고에 대비해 경찰 91명과 소방 공무원 45명, 군 당국과 코레일 관계자 등 총 166명이 출동해 승강장에 있는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출입을 통제했다. 경찰특공대가 현장에 도착해 폭발물탐지견 2마리를 가방에 붙여 수색했지만 폭발물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오후 4시 20분경 경찰이 폭발의 여파를 막는 방폭망을 가방에 둘러치고 특수 작업복을 입은 폭발물처리반 요원이 가방에 물사출분쇄기(물포)를 쐈다. 물포로 가방에 충격을 줘 실제 폭발을 유도한 것이다. 실제 폭발물이라면 방폭망 안에서만 터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물포를 쏘자 가방 내부에서 경미한 폭발음이 들렸다. 실제 폭발물일 가능성이 점점 높아진 것이다.
경찰은 10분쯤 뒤에 두 번째 물포를 쏴봤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폭발물이 아니라고 확신해 가방을 열어보자 안에선 남성 맞춤정장 여러 벌과 옷걸이 등이 쏟아졌다. 경찰이 철제형 뇌관이라고 오해한 건 철제 옷걸이 고리였다. 경찰은 1차 물포 충격 때 났던 경미한 폭발음은 가방이 흔들리면서 내부에 있던 옷걸이가 부딪쳐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폭발물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 뒤 강남구청역을 지나는 지하철 분당선과 7호선은 오후 4시 50분경부터 정상 운행됐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 직전 한 노인이 승강장에 가방을 놓고 가는 폐쇄회로(CC)TV 화면을 확보해 분석하고 있다”며 “가방을 놓고 간 것만으로는 죄가 아니어서 처벌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조동주 djc@donga.com·임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