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헤어져” 한마디에 야수로… ‘이별 살인’ 줄잇는다

박승헌기자 , 신광영기자 입력 2012-09-17 03:00수정 2015-05-23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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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이어 성남-여수서도… ‘결별 폭력’의 심리학
“대학 캠퍼스 커플인 남자친구가 요즘 싸울 때 칼을 들어요. 연애 초기에는 안 그랬는데 정말 무서워요. 혼자 힘으론 도저히 헤어질 수가 없어요.”(20대 여대생)


“4년간 만나면서 여러 번 헤어졌는데 그때마다 남자친구가 가족까지 죽인다고 협박해 할 수 없이 받아줬어요. 제 동생은 그것 때문에 세 번이나 이사했어요. 경찰에 신고해서라도 헤어지고 싶은데 그러면 정말 해코지할 것 같아요.”(30대 직장인)

“헤어진 남자친구를 피해 계속 옮겨 다니고 있어요. 잡히면 제 부모님, 동생들까지 다 죽이고 자살하겠대요. 직장을 잡으면 알고 쫓아올까봐 취직도 못해요.”(20대 여성)

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남자친구에 대한 공포를 토로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울산 자매 살해범 김홍일처럼 이별을 요구하는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이 계속되면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다.

16일에도 경기 성남시 중원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박모 씨(24)가 자신의 여자친구 박모 씨(24)와 박 씨의 어머니 문모 씨(48)의 목과 복부를 흉기로 마구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박 씨는 경찰에서 “여자친구 어머니가 우리의 교제를 반대해 평소 앙심을 품었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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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경찰서는 헤어지자는 여자친구의 집에 불을 지른 혐의로 정모 씨(41)를 16일 구속했다. 정 씨는 12일 오전 5시경 옛 여자친구인 A 씨의 여수 집으로 찾아가 출입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혐의다.

이처럼 헤어진 연인에게 앙심을 품은 옛 남자친구가 연인뿐 아니라 가족까지 살해하거나 방화를 저지르는 등 무차별 공격하는 성향이 나타나고 있다. 김홍일은 7월 20일 새벽 자신이 쫓아다녔던 여성의 동생을 먼저 살해했다. 그러고 나서 언니를 살해했다.

사귀다 헤어지거나 자신이 스토킹했던 여성을 찾아가 행패를 부리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과거엔 남성이 자살 소동을 부리며 자해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엔 여성을 살해하고 심지어 여성의 가족까지 해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남성의 집착에서 순정은 사라지고 공격성과 이기적인 성향만 강해진 것이다.

이별을 원하는 많은 여성이 선뜻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도 남자친구가 “가족을 해치겠다”고 협박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연인의 폭력이 살해 위협으로 악화되지 않으려면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연애 초기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면 단호하게 “싫다”는 의사를 표현하고 그래도 고쳐지지 않으면 신속히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주연 수원여성의전화 소장은 “여성이 폭력을 당하고도 순응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남성은 관계 유지 수단으로 폭력을 활용하게 된다”며 “한 번 사죄를 한 뒤에 또 폭력을 휘두른다면 고쳐질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인을 해치는 남성은 폭력을 통해 ‘상처 난 자존심을 회복한다’고 여긴다. 김홍일은 경찰 조사에서 “헤어지자는 말에 자존심이 상해 범행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특히 사회적 지위가 낮은 남성은 평소 연애 과정에서 축적된 열등감이 결별 통보 직후 극단적 분노로 바뀌기 쉽다.

연애 초기 남성들이 보이는 과도한 정성과 집착을 헌신으로 오해하는 것도 위험하다. 선물공세 등 물질적 투자를 아끼지 않으면서 공세적으로 매달리는 남성일수록 이별 통보를 받으면 거기에 비례해 박탈감과 배신감을 느낀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준호 교수는 “이런 남성들은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하는 보상심리에 폭행 자체를 정의로 착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홍일도 피해자 부모가 운영하던 주점에 갔다가 가게에 있던 피해여성에게 반해 5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적극적이었고, 다른 인간관계 없이 이 여성에게만 매달렸다. 김홍일 전화 통화의 90%는 모두 이 여성과의 통화였다.

경기대 이수정 교수는 “집착 증세를 보이는 연인과는 만남 횟수를 줄이고 상대가 다양한 인간관계를 만들도록 유도해 이별 후에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고현국 기자 mck@donga.com  
#이별 통보#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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