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 당신의 자녀는]부모 무관심에… 공부는 안되고… 고민 잊으려… 게임 수렁에

동아일보 입력 2010-07-27 03:00수정 2010-07-2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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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 속으로… 왜 빠지나
성업 중인 PC방 26일 오후 4시경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앞 PC방에서 청소년들이 컴퓨터로 인터넷게임을 즐기고 있다. 이날 본보 기자가 찾은 PC방 10곳 모두 초등학 생부터 대학생까지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양회성 기자
게임중독 아들 “게임 못하게 하면 아빠와 생깔거야”
한숨짓는 아빠
“이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서울 유명 대학의 A 교수는 요즘 게임중독에 빠진 중학생 아들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오락기를 끼고 살던 아이는 게임과 함께 자랐다고 한다. 처음에는 타이르다가 화가 날 때는 매도 들었지만 게임에 대한 집착은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심해졌다. 폭력적인 게임을 즐기던 아들은 실제 성격까지 공격적으로 변했다. “게임을 못하게 하면 아버지와 생까겠다(무시하겠다)”며 험한 말을 서슴지 않았고 심지어 죽어버리겠다며 자해를 시도하기도 했다. “어릴 때는 제 눈치라도 보던 놈이 크니까 반항을 하더군요. 이제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게임 때문에 자식과 싸우는 부모 마음은 누구나 똑같을 겁니다.”
게임중독은 일부 청소년에게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부모의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자란 학생들도 게임이라는 ‘가상현실’에 중독돼 가족들이 고통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을 얼마나 해야 중독이라는 건지, 왜 중독 증세가 생기고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 등 게임중독의 예방 및 치유법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부모가 게임에 몰두하는 아이를 붙잡고 호통만 치는 사이 아이는 점점 더 가상현실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본보 독자인 A 교수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문의한 것을 계기로 A 교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독자들을 위해 게임중독의 실태와 치유법을 심층 취재했다.》

임상훈(가명·15·중3) 군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미국으로 단기 해외 어학연수를 떠났다. 게임중독 증세가 나타난 건 귀국 후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부터였다. 미국에 가 있는 동안 중학교 과정 선행학습까지 마친 친구들과 점점 학력 격차가 벌어져 따라갈 수 없었다. 어머니가 잔소리를 할 때마다 임 군은 책 대신 다중접속온라인게임(MMORPG)인 ‘메이플스토리’에 접속했다. 게임 때문에 학교에 지각하는 날이 늘었고 주말에는 먹지도, 씻지도 않고 게임만 했다.

임 군을 만나본 전문가들이 “아직 중독 초기여서 정기적인 상담을 통해 정서적 스트레스를 줄이면 치유할 수 있다”고 했지만 더 뒤처질까 초조해하던 어머니에겐 그럴 여유가 없었다. 어머니는 두 달 만에 상담 치료를 접고 임 군을 병원에 입원시켰다. 하지만 “내가 정신병자냐”며 화를 내는 임 군과의 갈등은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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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김재철(가명·8) 군의 게임중독증은 여동생이 태어나면서 시작됐다. 학교에선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평범한 아이였지만 여동생에게 부모의 관심이 쏠리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난 김 군은 컴퓨터를 가까이하게 됐다. 가족들도 게임이 머리 회전에 좋다는 말만 믿고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김 군은 어느덧 하루 12시간씩 게임을 하기 시작했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날이 많아졌다.

○ 게임중독 왜 일어나나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게임에 빠지는 원인이 연령대별로 다르다고 말한다. 초등학생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의 학생들 중에서는 주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앓고 있는 아이들이 게임중독에 쉽게 빠진다. 하지현 건국대 신경정신과 교수는 “책상 앞에는 10분도 못 앉아 있는 아이들이지만 단순한 방식으로, 수동적으로 집중만 하면 되는 게임에는 오히려 과잉 몰입하기가 쉽다”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는 우울증이 게임중독의 원인이 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한다. 학교나 가정에서의 고민을 게임으로 ‘자가 치료’하는 셈이다.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되는 등 생활환경이 달라질 때도 게임중독을 조심해야 한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인터넷중독 전문치료기관 ‘보라매 아이윌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초등학교 6학년(만 12세)까지는 고위험군 환자가 전체의 1.4%인 반면 중학생이 되는 만 13세부터는 이 비율이 2.5%로, 고등학생이 되는 만 16세에는 2.8%로 높아진다.

이 센터의 박혜경 팀장은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는 게임중독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라며 “아이들의 심리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면 그만큼 게임중독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다.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이은경 교수는 “청소년기에는 대인관계 속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게 특징”이라며 “잦은 전학 등 환경 변화로 인해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면 그만큼 게임에 몰두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 중독 단계별 증상은?

그렇다면 중독은 어떤 단계를 거쳐 진행될까. 아이윌센터는 중독 초기 단계를 ‘호기심 단계’로 규정한다. 게임에 호기심을 갖고 주변 친구들과 관련 정보를 나누는 수준이다. 이때 대부분의 아이가 주로 수면 부족으로 수업시간에 졸거나 지각하는 증상을 보인다. 성적도 조금씩 떨어진다. 센터 측은 “초기 단계에는 부모가 대수롭지 않게 넘기거나 게임을 무조건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다 보면 자칫 중기 단계로 넘어간다”며 “이때 부모가 아이들과 대화를 시도해 게임 정보를 충분히 파악하고 아이들과 공감대를 키워 스스로 게임을 통제하고 조절할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기는 ‘대리만족’ 단계다. 현실에서 맛볼 수 없는 즐거움을 게임을 통해 맛보는 시기. 이 단계에서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게임머니에 집착하는 증세를 보인다. 게임머니를 구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부모 지갑에 손을 대거나 친구들에게서 돈을 갈취한다.

가장 심각한 ‘후기 단계’의 아이들은 현실과 게임 속 가상 세계를 구분하지 못한다. 오로지 온라인 상태만을 갈구하다 보니 범죄나 사고를 저지르기 쉽고 학교생활이나 대인관계도 포기하기 쉽다. 후기 단계 환자는 입원 등을 통한 격리치료가 필요하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이미하 인턴기자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4학년





▲동영상 = 온라인게임을 오프라인에서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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