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김마스타] 남자뮤지션 정신 차리게 만드는 홍대 앞 '기타걸(guitar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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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3일 17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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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대 앞 여성뮤지션의 대표주자 '소히'
● 신세대 기타걸이 만들어 나갈 새로운 한국인디문화

영화 '트랜스포머'를 기억하는가? 각양각색의 자동차들이 근사한 로봇으로 삼단 변신하는 스펙터클한 장관이 등장하는. 헌데 요즘 한국에는 마치 변신로봇처럼 변화무쌍한 여성뮤지션들이 출몰하고 있다.

그들의 악기는 더 이상 갸날픈 플루트나 정적인 피아노가 아니다. 고전영화 '흑인 올페'를 본 분이라면 쉽게 이해할 테지만, 여성 뮤지션들이 남성의 상징이자 현대음악에서 대표적인 마초 이미지를 가진 기타를 들고 나오기 시작한 것.

그리하여 홍대 앞에도 '기타걸'들이 대세를 이뤘다. 나아가 이들 기타걸이 음악시장의 분위기 자체를 주도하기 시작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뮤지션이나 아티스트들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과도한 음주가무와 김삿갓 느낌의 자유분방함, 그리고 뻔뻔한 모습으로 마치 드라마 '추노'에 나왔던 장혁류의 짐승남에 가까운 게 아니었을까. 그런데 이 기타걸들은 예기치도 못했던 모습, 심지어 대기업 커리어우먼의 복장이 어울리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그리고 서서히 우리 음악계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 인디 음악을 사랑한다면 기억해야 할 이름 '소히'

2010년 상반기를 차근차근 준비해서 등장한 이들 가운데 '앵두'라는 노래로 4년 전에 CF덕을 톡톡히 본 '소히(Sorri·브라질어로 미소를 뜻함)'라는 가수가 있다. 그녀는 10여 년의 이력 가운데 절반 이상은 베이시스트로 일했다.

하지만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던가. 음악의 뒷줄에서 앞줄로 나온 그녀는 이미 지루해진 한국의 인디음악계에 산소 같은 존재가 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여기 더해 흔치 않은 장르인 제 3세계(북미와 유럽을 제외한 전 세계의 음악스타일) 음악까지 들고 나왔다. 최근 '대중음악상'에서 빛을 발한 기타리스트 박주원과 아코디언 연주자 심성락 선생의 음반을 제외하고는 국산음악으로는 싸이월드 배경음악(BGM)으로 깔릴 만한 음악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극적인 존재다.

그녀는 아마도 싼 맛에 덜컥 샀던 아스트루드 질베르토(Astrud Gilberto)의 음악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던 걸까. 결국 무겁고 자기덩치보다 큰 베이스를 내려두고 가볍고 산뜻한 소리가 나는 나일론기타로 갈아타고 싱어송라이터의 대열에 합류했다.


소히는 2006년 1집 '앵두'를 발매, 리사 오노와 비슷한 보이스로 광고계를 사로잡았다. 타이틀곡 앵두와 'Pretty world'가 '예지미인', '롯데 봄녹차', '외환은행' 등의 CF에 각각 배경음악으로 삽입됐다. 말 그대로 3단 변신을 한 셈이다.

이번에는 새 앨범 제목 'Mingle(섞다, 교제하다)'이 뜻하듯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2010년 상반기 한국음악계와 산뜻한 '교제'에 나섰다. 홍대앞 까페와 집에서 조물조물 만들었던 오리지날 음악을 오븐에 잘 익힌 토마토와 같이 상 위에 올려놓은 모양새다. 그만큼 맛깔나고 세련미도 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자신 있는 긍정의 모양새를 뮤지션이 내보이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이번 음악에는 그의 서포터즈인 이한철의 'Tubeamp' 레이블 모토와 같이 유기농(organic)처럼 담백한 동료와 친구들과의 일상이야기들이 올려져 있다. 지난 4년은 이런 결과물을 만들기엔 짧지 않은 오랜 심사숙고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 기타걸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한국 인디음악의 세계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 지금은 조선시대도 아니며 6,70년대처럼 미니스커트를 줄자를 들고 다니며 재는 시대도 아니다. 오히려 여자라서 더 폭넓고 깊은 마음의 행로를 먼저 잡아내는 그녀에게는 무한도전할 수 있는 기본옵션이 펼쳐져 있다. 이런 기타걸들이 요즘 홍대앞 남자딴따라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타걸이라면 최근 몇 년간 출사표를 던진 선수들이 꽤나 있었다. 2010년 3월 '역전다방 보리차'라는 뜨거운 데뷔앨범을 낸 십년차 뮤지션 '정현서'(황보령밴드의 베이시스트)의 '투명'이 공연장을 활보할 기세이고, 한국인디시장의 만루홈런격인 '숨차는 댄스'도 있다. 눈물나는 발라드는 아니지만 서양이든 동양이든 정통음악과 가요를 접목해 교집합을 일궈내는 모던가야그머 '정민아'의 두번째 앨범 '잔상'콘서트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기도 했다.

나태함 속에 구태의연한 음악활동을 펼쳤던 2009년에 힘찬 하이킥을 날리는 홍대앞 여성들 앞에서 우리도 브라질 사람들처럼 가수가 노래하면 다같이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일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그저 생각만 요리조리 재고 있던 남자들에게 일격을 가한 기타걸들에게 환한 미소, '소히(sorrir:브라질어로 미소)'를 보낸다.

P.S
'소히'가 언젠가 한대수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 "쏘리? 뭐가 그렇게 미안해?"하고 웃으시더란다. 가수 소히는 4월17일 카페 '벨로주(VELOSO)'에서 앨범 발매 쇼케이스를 아주 성황리에 개최했다. 늦게라도 여성뮤지션 파워를 느껴보고 싶은 분들은 찾아서 들어주기를 간청한다.

김마스타 / 가수 겸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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