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천외한 불법 작업장과의 전쟁[게임 인더스트리]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5월 15일 10시 00분


게임 속 사냥터에 들어갔는데 이상한 장면을 본 경험,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캐릭터 여러 명이 똑같은 동선으로 움직이고, 같은 시간에 스킬을 사용하고, 말을 걸어도 반응은 없습니다. MMORPG를 오래 즐긴 이용자라면 익숙한 풍경입니다. 흔히 ‘작업장’이라 불리는 존재들이죠.

이 작업장은 게임사들의 오랜 골칫거리였습니다. 게임 속 재화를 모아 현금으로 판매하는 수준을 넘어 하나의 ‘지하 산업’으로 진화한 사례도 여럿 발생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게임 내에서 진행되는 만큼 ‘작업장’을 게임사에서 막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온라인으로 게임을 즐기기게 된 과거부터 현재까지 게임사들이 완전히 막아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일이 발생했을까요?

작업장과 게임사(AI 생성 이미지)
작업장과 게임사(AI 생성 이미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작업장’의 진화

초창기 작업장은 사람이 직접 캐릭터를 조작해 게임 속 골드나 아이템을 모으는 방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게임 속 시간을 투자해 재화를 확보하고, 이를 다른 이용자에게 현금으로 판매하는 구조였죠. 학계에서는 이를 ‘RMT(Real Money Trading·현금 거래)’ 또는 ‘골드 파밍(Gold Farming)’으로 부릅니다.

문제는 이 시장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산업화됐다는 점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국가가 중국인데요. 2000년대 중반부터 해외 언론과 연구에서는 중국 일부 지역에서 수십~수백 대 PC를 돌리며 MMORPG 재화를 생산하는 이른바 ‘골드 공장’이 등장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여러 명이 교대로 게임을 플레이하며 재화를 수집하고, 이를 글로벌 거래 사이트에 판매하는 방식입니다. 한때는 중국 골드 파머 수가 수십만 명 규모에 달했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베네수엘라 국민 평균 월급보다 골드 가치가 높았던 ‘룬스 케이프’. 출처 게임동아
베네수엘라 국민 평균 월급보다 골드 가치가 높았던 ‘룬스 케이프’. 출처 게임동아
흥미로운 점은 이런 작업장이 단순한 ‘불법 업자’ 수준을 넘어, 현실 경제와 맞물리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경제 위기를 겪던 베네수엘라에서는 일부 이용자들이 MMORPG 재화를 판매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례가 외신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현지 화폐 가치가 급락하자 게임 속 재화를 해외 이용자에게 판매해 달러를 확보하는 방식이 등장한 것입니다. 게임 속 사냥이 현실의 노동처럼 작동한 셈입니다.

최근에는 작업장의 형태가 더욱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사람이 직접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 행동을 수행하는 매크로가 등장했고, 이후에는 사람처럼 이동 경로를 바꾸고 사냥 패턴을 조절하는 ‘봇 군단’이 확산됐습니다.

일부 보안 업계에서는 클라우드 서버 기반으로 수백 개 계정을 동시에 운영하는 ‘클라우드 작업장’도 등장했다고 보고합니다. PC방 한쪽에서 컴퓨터를 돌리던 시대에서, 이제는 데이터센터처럼 움직이는 구조로 바뀌고 있는 셈입니다. 최근에는 AI 기술을 활용해 사람 행동을 흉내 내며 탐지를 우회하려는 시도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작업장의 폐해

그렇다면 이런 작업장은 게임에 얼마나 큰 피해를 주고 있을까요? 문제는 단순히 “보기 싫다” 수준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게임 경제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MMORPG에서 작업장이 대량으로 재화를 생산하면 시장에 골드가 과잉 공급됩니다. 아이템 가격이 왜곡되고, 정상 이용자가 게임을 플레이해 얻는 보상이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희귀 아이템 공급 구조가 무너지고, 거래소 경제가 흔들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게임 내 아이템 가치 하락은 게임 기업에게 엄청난 피해로 다가옵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얻게 되는 보상의 가치가 하락하니 유저들이 게임을 플레이할 동기 부여가 떨어지고,기존 장비 가치 하락으로 기존 유저들의 자산 역시 흔들립니다.

혹자는 작업장이 많아야 인기 게임이라고도 합니다. 작업장도 동시 접속한 계정으로 취급되니언 듯 동접자가 많아 보이고, 남들이 귀찮아하는 자원 채집을 알아서 해주어 거래소에 풀어준다는 논리죠. 하지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 작업장은 결국 게임에 큰 피해로 다가옵니다.

기나긴 게임사들의 작업장 전쟁

이러다 보니 게임사들의 ‘작업장’ 대응도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GM이 직접 접속해 수동 단속을 진행하거나 IP를 차단하는 방식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작업장이 거대 산업처럼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접근법도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사람이 아니라 데이터가 작업장을 잡는 시대가 됐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리니지 클래식 공지. 출처 NC
리니지 클래식 공지. 출처 NC
대표적인 사례가 엔씨소프트입니다. 엔씨소프트는 오래전부터 ‘리니지’ 시리즈에서 작업장과 전쟁을 벌여왔습니다. 특히 비정상 계정이 특정 사냥터를 점령하고 게임 재화를 대량 생산하는 문제가 반복되자, 반복 행동 패턴과 비정상 거래 흐름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대응 범위를 넓혔습니다. 실제로 ‘리니지M’은 정기적으로 수만 개 계정을 제재했다는 공지를 올리며 비정상 이용 대응 현황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넥슨 역시 MMORPG와 라이브 서비스 게임에서 작업장 대응을 강화해 온 대표 사례입니다. ‘메이플스토리’는 자동 사냥과 불법 프로그램 문제로 몸살을 앓자, 장기간 거래 로그와 행동 패턴을 분석하는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단순히 “24시간 사냥하면 작업장”이라는 방식이 아니라, 특정 시간대 반복 행동, 이동 패턴, 계정 간 재화 이동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비정상 계정을 탐지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WOW-토큰. 출처 블리자드코리아
WOW-토큰. 출처 블리자드코리아
해외 사례도 흥미롭습니다. 블리자드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불법 골드 거래가 지나치게 커지자, 완전히 다른 해법을 꺼냈습니다. 바로 ‘WoW 토큰’입니다. 이용자가 공식적으로 게임 시간을 구매해 게임 내 재화로 교환할 수 있게 한 것이죠. 불법 거래를 단속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아예 수요 자체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인 셈입니다. 실제로 이는 MMORPG 업계에서 “막을 수 없으면 흡수한다”는 대표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국내에서는 스마일게이트의 ‘로스트아크’도 대규모 작업장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일부 서버에서 봇 계정이 급증하며 초반 지역이 사실상 작업장 캐릭터로 가득 찼다는 이용자 반응이 이어졌고, 회사 측은 수십만 개 계정을 정지시키는 강경 대응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이후 거래 제한과 경제 구조 개편을 병행하며 게임 내 재화 흐름을 조정했습니다.

최근에는 AI 대응도 시작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클릭 패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면 자연스럽게 할 행동과 봇이 반복하는 행동의 차이를 학습하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이와 동시에 작업장도 진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부 해외 보안 업계에서는 사람처럼 이동 경로를 바꾸고, 랜덤 행동을 섞어 탐지를 우회하는 ‘인간형 봇’이 등장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게임사가 AI로 잡으면 작업장도 AI로 피하는, 일종의 ‘AI 대 AI’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업계는 여전히 고민이 많습니다. 작업장을 강하게 막을수록 일반 이용자 자유도가 함께 줄어드는 부작용도 생기기 때문입니다. 거래 제한이 강화되면 정상 이용자도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게임사의 싸움은 단순히 작업장을 얼마나 많이 잡느냐가 아니라, ‘작업장이 돈이 되지 않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과연 인터넷과 게임이 만나는 순간부터 발생한 이 ‘작업장’이 AI를 만나 더 고도화된 지금. 게임사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를 차단하여 유저들의 생활권을 지켜낼 수 있을지 앞으로의 모습이 궁금해 집니다.

#게임사#작업장#클라우드 작업장#봇 군단#게임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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