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형사립 상산고 홍성대 이사장 인터뷰
“정부 믿고 학교 키웠는데
강제로 자율고로 바꾸라니
사교육 잡기에만 급급
교육본질 훼손하는 포퓰리즘”
교육과학기술부가 자립형사립고 폐지 방침을 확정한 26일, 홍성대 상산고 이사장의 하루도 길었다. 이날 오전 건강검진을 받고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으로 돌아온 홍 이사장은 오후 내내 서재에서 나오지 않았다. 전영한 기자
자립형사립고(자사고)를 3월 말까지 자율형사립고(자율고)나 일반고로 모두 전환시키겠다는 교육과학기술부의 발표에 자사고들은 26일 “정부를 믿고 7, 8년 동안 매년 많은 돈을 투자해 학교를 키워 왔는데 이제 와서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말”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교과부는 자사고가 자율고로 전환해 자사고 때처럼 매년 학교운영비의 25%를 부담할 경우 전국 단위로 학생을 선발하는 현재의 신입생 선발 방법을 유지시켜 주겠다고 밝혔지만 자사고들은 자율고 전환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수학의 정석’ 저자로 7년 전부터 전주 상산고를 자사고로 전환해 운영해온 홍성대 이사장은 “앞으로 10년, 20년만 더 잘하면 세계적인 명문고로 도약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는데 이런 학교를 밀어주지는 못할망정 없애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학교 운영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정부의 자사고 전환 발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교과부의 발표는 사교육을 잡기 위해서라면 교육의 본질을 훼손해도 된다는 교육 포퓰리즘입니다. 교육은 자율과 경쟁체제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자율고로 전환해 학교운영금의 25%를 부담하면 현재처럼 전국에서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고 다른 자율고처럼 학교운영금의 3%만 부담하면 지역단위로 학생을 선발하라는 교과부의 방침은 돈 주고 자율성을 사라는 말 아닙니까. 자율성을 팔아먹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또 인재 양성은 나라 전체를 살리는 겁니다.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면 국제적 인재를 양성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준화를 깨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지만 할 수 없다면 원하는 사립학교만이라도 평준화 틀에서 빼줘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정부는 확고한 신념 없이 사교육 시장 팽창, 과열 과외 같은 사회적 문제 해결에만 급급한 것 같습니다. 교육은 이런 방식으로 가면 안 됩니다. 교육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압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겉핥기 식으로만 아는 것 같습니다”
―교과부는 이미 1년 전 전환 방침을 통보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교과부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할 때 자사고가 자율고로 전환 신청할 경우 중간 심사과정을 생략하고 자동적으로 승인해 준다고 했습니다. 자율고로 전환하라는 강제조항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자율고 전환을 신청하지 않으면 일반고로 강제 전환시킨다는 것이니까 완전히 다른 얘깁니다.”
―자율고로의 전환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 “현재의 자율고는 온전한 제도가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안정적인 재정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재 자율고는 학교재단이 학교운영비의 3∼5%를 부담하도록 돼 있는데 이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입니다. 자사고의 경우 학교운영비의 25%를 부담해도 운영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운영비 부담을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 자율고 수준으로 운영비 부담을 줄이면 학교 운영 자체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부족한 돈을 학생들에게 내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처음 자사고 설립 때 정부의 계획은 무엇이었나요.
“김영삼 정부에서 평준화에 따른 획일화된 교육을 극복하기 위한 보완책으로 국가인재 양성을 위해 자립형사립고 기안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김대중 정부에서 승인해 준 것입니다. 그 배경에는 부족한 정부 재정이 있었습니다. 스스로 재원을 조달할 수 있는 학교에 대해서는 학교가 자립하도록 해주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율학교의 하나로 자사고가 만들어졌습니다. 자사고 설립을 유도하기 위해 학생 선발 방식, 학사 과정 운영 등을 학교의 건학이념에 따라 자율적으로 선정하도록 했습니다. 단, 국영수 위주 지필고사는 금지시켰습니다.”
―하지만 특목고가 사교육비를 폭증시키고 있다는 비난이 많지 않습니까. “7년 동안 학교에 모두 350억 원 정도를 투자했습니다. 그동안 학생들이 낸 학비가 290억 원이니 학생들보다 훨씬 많이 부담한 셈입니다. 지난해에도 35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주위에서는 미친놈이라고도 했지만 좋은 학생을 선발해 키우는 기쁨으로 했습니다. 현재 상산고는 1000명이 기숙사 생활을 합니다. 전체 학생의 95%입니다. 1학년생들은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며 과외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사교육비 줄이기는 학교 하기 나름입니다. 학교에서 공교육 살려서 열심히 하면 됩니다. 귀족학교라는 비난도 있는데 올해 신입생 중에는 강원도 고성에서 데려온 학생도 5명이나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울릉도에서도 학생을 데려왔습니다. 사회적 배려 대상 지역에서 선발한 것입니다. 이 학생들은 돈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니게 할 생각입니다. 교과부가 입학사정관제로 뽑으라고 하지 않아도 앞장서 하고 있습니다. 가만 놔두면 됩니다.”
―앞으로 대책은 무엇인가요. “하루도 운영해본 적 없는 자율고는 법제화해 주고 8년간 시범운영한 자사고를 없애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자율고처럼 자사고 존립 규정을 법제화해 줘야 합니다. 법 조항을 신설해 법적 근거 만들어주기 싫으면 그냥 남아 있게 해주면 됩니다. 강제로 전환시키는 것은 절대 안 됩니다. 그동안 자사고 운영자와 교장들이 두 차례 연석회의를 가졌습니다. 지난주 교과부 장관에게 자율고로 전환할 경우 지위는 어떻게 유지되는지, 보장되는 법적 근거는 무엇인지 등을 묻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장관의 답변을 받아 보고 답변에 대한 법제처의 유권해석 받아 보고 대책을 다시 논의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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