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승일]새는 수도관 방치하며 ‘녹색성장’ 한다고?

  • 입력 2009년 9월 22일 02시 51분


기후변화는 원인이야 차치하고 부인할 수 없는 현상으로 전 세계인에게 다가오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에너지 물의 부족이 인류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온다는 우려에 전 세계가 대책마련에 고심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저탄소 녹색성장 비전은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한국의 녹색성장 정책 중간보고서’에서 “한국은 세계 최초로 국가 성장 패러다임을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변환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호평했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녹색성장 정책은 지난달 24일 녹색위원회가 발표했듯이 녹색성장교육 활성화방안, 녹색생활 실천 확산방안, 신재생 에너지 산업기반 강화계획의 3개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듯하다. 아쉬운 점은 보편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계획을 세우다 보니 가까운 곳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정부정책은 다소 간과하는 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다름 아닌 물에 관한 부분이다. 수자원과 에너지의 낭비가 눈에 보이는 수돗물의 누수방지에 일언반구가 없다.

지난봄에 태백시가 겪었던 물 부족 사태는 언제라도 어느 도시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태백시의 물 부족을 겪으면서 전 국민이 놀랐던 점은 정수장에서 공급하는 물의 반이 주민에게 가지 않고 새나간다는 사실이다. 수도관에서 새는 물만 막아도 태백시민이 그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절반이나 새나가는 물이 태백시만의 현상은 아니라는 데 문제가 더 심각하다. 국내 많은 중소도시의 수도관은 낡아서 새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이 열악하여 개선에 한계가 있다. 새는 사실을 뻔히 알지만 지하에 묻혀 있는 낡은 관을 고치는 데 드는 예산이 엄청나서 지방자치단체가 감당하지 못한다. 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가 진통제로 연명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초기에 수술하면 간단한 수술로도 회복할 수 있는 환자지만 돈이 없어서 진통제만 먹다가는 결국 죽음에 이른다. 아니면 큰 수술을 해야 한다. 이런 걸 두고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제도가 있어서 사회안전망 역할을 한다. 복지국가로서 개인의 건강에 대해 국가가 보조하듯이 국가의 수자원이, 물이 새는 현실도 정부가 예산을 투입하여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개선해 나가야 한다.

누수를 방지하면 에너지 낭비를 막을 수 있다. 수도사업자는 강에서 물을 끌어들여 깨끗한 먹는 물로 만들고 여러 지역의 배수지로 보내 가정까지 물을 공급한다. 이 과정에서 전기가 필요하다. 통계상으로는 취수하여 먹는 물로 만들어서 지역의 배수지까지 보내는 전력량은 물 t당 약 0.2kWh를 사용한다. 배수지에서 가정까지 보내는 전력량은 제외한 수치다. 전력소모량의 90% 이상이 물을 보내는 데 쓰인다고 생각하고, 국내 수도관이 배수지까지 약 8200km, 배수지로부터 가정까지 약 7만 km임을 감안하면 전력소모량은 통계수치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는 매일 2000만 t의 물을 소비한다. 누수를 10% 줄인다면 연간 전력량도 상당히 절약할 수 있다. 또 누수를 막으면 수자원을 보전하고 생태계의 유지도 돕는다. 낡아서 누수가 되는 관을 방치하면 해가 갈수록 더 많은 물이 샌다. 에너지와 수자원의 낭비가 갈수록 심해지고 생태계를 위협하며 저수지와 댐의 증설이 필요하게 된다. 저탄소 녹색성장에 역행한다. 미래지향적인 녹색비전도 필요하지만 누수방지처럼 당장 시행해야 할 문제부터 해결해야 진정한 녹색성장이 실현되지 않을까?

최승일 고려대 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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