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연수]소니의 귀환

  • 입력 2009년 6월 17일 20시 06분


소니 워크맨이 다음 달 1일로 탄생 30주년을 맞는다. 최초의 휴대용 음악 플레이어인 워크맨은 1980, 90년대 젊은이들의 아이콘이었고 미-제너레이션(me-generation)의 상징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각종 ‘신화(神話)’를 창조했지만 소니는 워크맨 30주년을 맞아 어떤 기념식도 할 계획이 없다. 세계 각국 언론의 취재 요청도 거절했다고 한다. 오히려 소니는 1만6000명을 감원하고 공장을 폐쇄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다.

경제위기로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이 악전고투하고 있지만 소니의 고난은 특별한 데가 있다. 소니는 TV 로봇 비디오게임 등 분야를 막론하고 일본 전자·정보기술(IT) 산업의 대명사였다. 1980년대 일본의 기업과 자본이 미국을 공략할 때도 최첨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자제품은 삼성전자에 밀리고, 비디오게임은 닌텐도에 밀리고, 워크맨은 애플의 아이팟에 밀려 앞날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세상은 돌고 도는가. 지금 소니를 압도하며 승승장구하는 닌텐도와 애플도 불과 10여 년 전엔 부도 직전까지 몰렸다. 120년 역사를 가진 게임업체 닌텐도는 1990년대 중반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PS)으로 게임시장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면서 어려움에 빠졌다. PS의 압도적인 기술력과 화려한 그래픽 앞에서 어린이 장난감 수준의 닌텐도 게임기는 맥을 못 췄다.

애플도 마찬가지다. 퍼스널컴퓨터라는 새로운 제품을 세상에 선보인 애플은 컴퓨터 하드웨어는 IBM에, 소프트웨어는 마이크로소프트에 밀려나 하루라도 빨리 다른 회사에 팔리길 기다리는 처지로 전락했다. 소니를 포함해 당시 잘나가던 몇몇 회사가 애플을 사갈 후보들이었다. 이후 경영권을 둘러싼 몇 번의 ‘쿠데타’를 통해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다시 전면에 나선 뒤에야 애플은 재기에 성공한다.

애플과 닌텐도의 부활에는 공통점이 있다. 두 회사 모두 어려운 시기에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새로 태어나는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닌텐도 창업자의 자손인 야마우치 히로시는 죽어가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회장직을 내놓고, 일개 제휴회사 연구원 출신인 이와타 사토루를 새 최고경영자(CEO)로 발탁했다. 이와타는 자신이 기술자이면서도 기술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끈질기게 회사원들의 아이디어를 수렴해 히트작을 만들어냈다.

애플에 돌아간 스티브 잡스는 방만한 연구개발 과제들을 정비해 70%를 버리고 30%만 남겼다. 그는 회사에 어떤 프로젝트가 있고 어떤 인재가 있는지 발로 뛰어 검증했다. 심지어 우연히 만난 직원에게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라고 물어서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사직하게도 했다.

소니 역시 지금의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혁명에 준하는 개혁을 하고 있다. 소니 최초의 외국인 CEO 하워드 스트링어 회장은 올해 초 자신이 직접 사장직을 겸하며 일선에 뛰어들었다. 오픈 테크놀로지와 모든 제품의 네트워크화라는 모토를 내걸고 절치부심하고 있다. 또다시 역전을 통해 ‘소니의 귀환’이 이뤄질지 기대된다.

서로 인연(혹은 악연)이 깊은 이 세 거인의 얽히고설킨 ‘드라마 삼국지(三國志)’가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나라, 기업, 개인에게 주는 교훈은 결코 가볍지 않다.

신연수 산업부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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