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칼럼]위기의 깊이

  • 입력 2008년 6월 9일 03시 01분


한 달 넘게 계속되며 꼬여만 가는 촛불시위 정국을 바라보노라면 참담하다 못해 자괴감이 든다. 국정이 거의 마비된 가운데 정국은 이제 대통령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것으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서 승리감에 도취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제 집이 타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불길 타오르는 모습에 환호하는 어린이에나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직접적 원인은 물론 이명박 정부에 있다. “광우병이 돌아도 수입을 중단할 수 없게 되었다”는 방송을 듣고도 걱정하고 분개하지 않을 사람이 없고 인수위 시절부터 새 정부가 계속 되는 실수로 국민의 신뢰를 잃지 않았더라면 사태가 이처럼 험악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길게 볼 때 특히 걱정스러운 것은 100일밖에 되지 않은 대통령에게 벌써 “물러가라”는 구호가 나오고 새로 선출된 정치권 지도자들까지 시위자들의 세에 편승하는 모습이다. 5000만 국민이 직접민주주의를 하는 것이 가능하고 바람직하다면 국회는 왜 있는 것인가. 민주적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나라에서 대중시위는 한두 번의 ‘시위’로 정치권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끝나야지 한 달 이상 계속된다면 그것은 대의민주주의가 대중독재나 내란으로 치닫게 됨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거리에 나선 사람들이 국민 전부는 아니며 사안마다 국민의 의견이 다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혼란의 피해 국민에 고스란히

흥분한 국민이, 특히 어린 학생들까지 거리에 나선다면 문제를 빨리 국회 안으로 끌어들여 국민이 안심하고 본업에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새 국회 개원까지 거부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포기하고 스스로의 임무를 방기하는 일이다.

인간과 국민으로서의 안전과 권리를 스스로 지키겠다고 한 달째 거리로 나서며 청와대 진입까지 시도하는 사람들도 그것이 책임 있는 행동인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세계가 지금 무섭게 변하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광우병에 대한 우려는 몸에 와 닿는 것이기에 특히 강하게 느끼지만 그것은 여러 가지 문제 중 하나일 뿐이다.

식량, 물, 자원 부족에서 북한의 핵뿐 아니라 체제붕괴 위험에서 오는 위협, 사회의 고령화 문제 및 경제력, 정치력에서 우리를 급속도로 추격하고 추월하는 나라들의 도전에 이르기까지 절박하고 거대한 문제들이 우리를 옥죄고 있는데 정부는 손을 놓고 있는 형편이다. 나라의 형세가 추락하면 광우병을 걱정하기에 앞서 쇠고기를 사먹을 능력도 없는 상황이 의외로 빨리 닥칠 수도 있다. 실망스러운 정부를 응징하기는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지만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무능하고 오만하고 무책임하다면 반년 전 우리는 왜 더 나은 대안을 내지 못했던가.

또 한 가지 매우 중요하게 짚어야 할 것이 매체들의 역할과 책임이다. 언론은 비판적 기능을 존재이유로 한다. 그러나 그것은 투명성과 균형감각에 기초한 진정한 사회통합을 향한 노력이고 정부와 국민 간에 원활한 의사소통을 촉진하기 위한 공익적 기능이어야 한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측을 매도하고 존재이유마저 부정하려 든다면 민주주의는 우중주의로 전락한다. 특히 막강한 힘을 가진 시청각 매체들이 선동적 편파방송에 대해 사과하라는 해당기관의 지시도 무시하는 무소불위의 공룡이 되고 인터넷 매체 악용에 대한 대처방법도 없다면 그런 매체에 의존도가 높은 순진한 사람들은 특정 세력의 정치적 도구로 쉽게 전락하고 대중민주주의는 독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선동 방송-인터넷 대처법 없나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지 겨우 100일이 되었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이런 난국에 직면하게 된 데 대한 궁극적 설명은 결국 우리 국민 모두에게 만연되어 있는 정신적 나태와 빈곤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권력과 물신숭배에 빠져 모든 것을 자기중심의 흑백논리로 재단하고 사람만 교체하면, 아니 자기가 나서기만 하면 모든 일이 쉽게 풀릴 듯한 안일한 생각을 하며 잘못에 대한 책임은 모두 남에게 돌리려는 질병에 우리 모두가 걸려 있는 것이다. 그러한 위선적이고 안이한 자세에서 벗어나 각자가 양심과 양식을 되찾기 위해 피나게 노력하는 것만이 난국을 극복하고 다시는 그런 일에 빠져들지 않을 확실한 길이 아닌가 한다.

이인호 KAIST 김보정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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