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재훈]비정규직 관련法의 딜레마

  • 입력 2008년 6월 2일 03시 01분


지난해 7월 시행된 비정규직 관련법(이른바 비정규직보호법)이 이제 곧 1년을 맞는다. 그런데 요즘 법제도의 유효성에 대한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도입 때부터 이랜드 사태 등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겪으면서 법개정 시비가 야기됐던 터라 현장에서 입법취지(비정규직 남용방지 및 차별금지)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을지 사회적 관심이 높았던 게 사실이다.

보호법 시행 후 처우 되레 악화

이런 와중에 지난달 발표된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근무형태별 부가조사’ 자료는 이 법의 실효성에 상당한 의문을 제기하게 했다. 더구나 7월 100인 이상 299인 이하의 사업장에까지 확대 실시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어서 우려가 더 크다.

통계청의 조사결과는 전체 근로자 중 비정규직의 비중이 줄었지만 일일(단기)근로나 파견·용역 등 비정규직 중에서도 고용안정성이 가장 취약한 비전형근로자가 233만 명으로 1년 전에 비해 3.8% 늘었고, 시간제근로자도 5.6% 증가한 130만1000명으로 나타나 오히려 내용면에서 질적 저하 현상을 보여줬다. 또 올해 1분기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은 월평균 210만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 늘었지만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은 오히려 0.1% 줄어 평균임금의 격차가 더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법이 시행되면 기업은 정규직 전환부담이 높은 기간제(근로형태별)나 상용(종사상 지위별)직 근로자를 줄이는 대신 부담이 덜한 비전형, 시간제, 임시직 근로자를 늘릴 것으로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것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의 해석을 놓고 노동부 관계자는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비정규직보호법의 입법취지 중 남용방지 측면에서 노사는 현행 사용기간 제한 및 파견허용업무 제한이 비정규직의 고용안정과 노동시장 유연성 어느 한쪽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차별방지와 관련해서는 차별시정제도 회피 목적의 사내하도급 추진 등 입법 취지에 역행하는 일들이 발생함에 따라 노측은 이에 대한 효과적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반면, 기업 측은 사내하도급에 대한 규제는 노동시장을 지나치게 경직적으로 만든다며 반대하고 있다.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이후 우리은행, 부산은행, 보건의료산업노조 등 대표적인 몇 가지 긍정적인 사례도 있고, 제도를 시행한 지 불과 1년도 안 됐으니 좀 더 두고 보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전체 비정규직의 7.8%인 44만4000명이 종사하는 100인 이상 299인 이하 사업장에 대한 법 적용을 코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이 제도에 대한 보완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법제도 시행 이후의 평가를 근거로 노측은 차별시정제도 보완과 사내하도급에 대한 효과적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기업 측은 사용기간 제한(2년)의 완화를 요구하면서도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 고용의 경직성 때문에 생긴 것이므로 기간제한을 완화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대한상공회의소 1월 조사결과). 또 경영상의 해고 기준 및 절차 완화와 같은 정규직의 고용유연성 제고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는 한편 파견업무의 대폭 확대도 요구하고 있다.

‘299인 이하 사업장’선 제도보완을

첨예하게 대립하는 노사 양측의 주장을 조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사민정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통해 고용안정과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서로 모순되는 과제에 대한 제3의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동시에 정부는 299인 이하 사업장의 비정규직 고용의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는 한편 그에 근거한 올바른 정책수립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재훈 인하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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