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화영]설이 왔다,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 입력 2008년 2월 6일 03시 01분


현관 앞 매화나무 아래 서서 저무는 산길을 내려가는 자동차 꽁무니의 빨간 불빛을 바라본다. 차가 모퉁이를 돌고 나면 까무룩 쏟아지는 저녁 어스름 속에 빈산과 나 혼자 남는다. 사람과 길이 지워지고 헐벗은 나무들마저 어둠에 묻힌다. 앞산의 실루엣만이 뚜렷해진다. 하루가 저물 때, 한 해가 끝나 갈 때, 한 사람의 생애가 머리털에 회색으로 내려앉을 때, 문득 세상과 삶은 그 모난 데가 깎여 둥글고 너그러워지면서 단순한 실루엣으로 요약된다. 시간이 느리고 투명하게 흐른다. 이만큼 물러서서 바라보는 거리가 한갓 범부에게도 순간적인 예지의 빛을 던져줄 때가 있다.

반가운 옛 제자들 산골 집 찾아와

세밑이라고 서울 사는 옛 제자들이 인사 겸 해 산골 집으로 찾아와 놀다 돌아갔다. 몇은 외국 유학 가서 피나는 세월을 쌓아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귀국했을 때는 어느새 ‘무한경쟁’이란 이름의 시장 속에서 인문학은 낯설어져 있었다. 오랜 전공 분야를 굽혀 무슨 ‘먹힐 만한’ 프로젝트에 이름을 넣고 간신히 비정규직 연구원이 돼 적어도 당분간은 가족들 앞에 체면을 세웠단다. 그래도 표정이 턱없이 밝다.

결혼해 아이 낳고 일상에 쫓기던 대학원 여학생 제자도 왔다. 어느새 40대를 바라보며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시골 동네로 아예 이사 왔단다. 엄마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동안 아이는 미꾸라지를 잡는다. 자원해 시골 지점으로 전근한 남편은 허름한 저고리 주머니에서 삐죽 나온 장갑을 잡아당기며 자신의 아내에게 눈짓을 한다. 시간 나면 와서 장작을 패 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작은 이미 몇 주일 전, 덩치 크고 힘 좋은 젊은 시인이 다 패어 쌓아주고 갔다. 시골에는 노인들뿐이라 돈을 준대도 장작 패 줄 사람이 없다. 그런데 잘나가는 서울 본사를 마다하고 시골 지점으로 온 젊은이, 전혀 창백하지 않은 서정시인이 씩 웃으며 도끼자루를 든다. 사람의 얼굴이 거기 있다.

산등성이로부터 급경사의 골짜기로 밀고 내려오는 굴참나무, 떡갈나무 잡목들에 저항하며 마지막 배수진을 친 이 아름드리 소나무 숲 속에 집을 지은 것은 5년 전이었다. 아득한 옛날의 엄청난 지각변동을 증언하듯 식탁만 한 수십 개의 바위가 파도를 이루는 험한 땅이라 해 지면 인근에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태고의 어둠이 진주했다. 지금은 숲 저쪽에 집 한 채가 새로 섰다. 바위 위에 걸쳐놓은 대나무 막대가 울타리요 대문인데 신문도 오지 않는 우체통에는 전기료 고지서만 꽂혀 있더니 그 속에 작은 새가 집을 지었다. 지금은 골짜기에 새소리 물소리 모두 그치고 이끼 돋은 바위들은 잔설을 뒤집어쓴 채 얼룩소처럼 엎디어 있다. 그러나 가랑잎 속 땅에 묻어놓은 크로커스, 튤립, 백합의 구근들은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새봄을 위해 어둠을 더듬는다. 꽃피는 해를 맞은 바위틈의 해거리 괴불주머니는 남녘의 동백꽃 풍문에 지레 설레고 있을 것이다. 절기는 음력인데 마음은 벌써 양력으로 앞산 능선을 지우며 무성해질 푸른 활엽으로 핀다.

친구들 가슴에 희망의 빛이…

우리는 함께 오래 삭은 낙엽을 밟고 숲을 지나 천천히 걸어 개울가로 가 보았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새봄이 다가옴이 좋았다. 얼음이 녹지 않은 물가엔 야생 앵초들이 낙엽지붕을 떠들어 올리려고 숨을 고르지만 나는 아직 겨울의 입을 다물고 내색하지 않았다. 양력 설날 세운 내 작심삼일 각오가 이지러지고 있음을 어찌 알고 음력설이 한 번 더 온다고 용기를 주려는 듯 먼 길 찾아온 이 옛 친구들의 가슴에 완강한 희망이 빛나고 있음을 나는 안다. 시선을 돌리면 거기 사람의 얼굴이 있다.

김화영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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