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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월 15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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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녁자리에는 작가 서영은 씨도 참석했다. 그가 참석한 데는 까닭이 있었다. 두 달 전 19세 난 베트남 신부가 나이 많은 한국인 남편에게 매를 맞아 처참하게 숨진 사연을 방송을 통해 알게 됐다. 갈비뼈가 18곳이나 부러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베트남이 들끓었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다.
그때 서 씨는 어린 딸 후안마이를 머나먼 이국땅에 시집보낸 어머니의 시린 가슴이 문득 떠올랐다고 한다. ‘딸이 모진 매를 맞아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의 가슴이 얼마나 무너졌을까.’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그때부터 연락이 닿는 지인들에게 취지를 알리고 얼마간의 돈을 갹출했다.
돈을 전달할 방안을 찾던 서 씨는 마침 베트남 문인들의 방한 소식을 들었다. 서 씨는 몸져누워 있을지도 모를 후안마이의 어머니에게 위로의 글과 함께 이 돈을 전하기 위해 참석했다. 서 씨가 모은 돈을 꺼내자 현장에 있던 여성 문인들도 십시일반 돈을 냈다. 환전하면 3000달러가 조금 넘을 돈과 함께 위로의 글을 봉투에 넣어 베트남 문인들에게 전했다.
당시 한국에 온 베트남 문인 중 좌장은 노(老)시인이었다. 베트남 국민시인으로 통하는 찜짱(70) 시인은 형형한 눈빛으로 두 손 모아 합장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통역을 통해 “이 돈과 글을 후안마이의 모친에게 꼭 전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호찌민 시 작가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원로 시인으로 대표작 ‘수련꽃’은 국내에도 소개돼 있다. 베트남 신부의 비극적인 얘기가 화제에 오르자 발랄하게 생각을 말하던 응우옌옥뜨의 표정에도 그늘이 스쳤다.
베트남 신부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국내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지난해 입국한 외국인 신부 중 베트남 출신이 9800여 명이나 된다. 전체 외국인 신부 중 30%가 조금 넘는 규모로 중국 다음으로 많다. 문화가 다르고 말이 통하지 않아 중국동포 신부들과 달리 베트남 신부들은 국내 적응과 권리 주장이 쉽지 않은 예가 많다고 한다.
특히 후안마이가 겪은 비극은 다문화사회로 옮겨가는 한국 사회의 그늘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그러다 보니 응우옌민찌엣 베트남 주석이 지난해 말 “한국에 사는 베트남 여성들이 잘살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도와 달라”는 당부까지 했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국제결혼 중개업을 허가제로 바꾸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그러나 법과 제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국경이 무너진 글로벌 시대에 맞게 우리의 의식부터 바꾸는 게 좋다.
날이 저문다. 밤하늘에 작은 별 하나가 스친다. 혹시 후안마이의 원혼이 차가운 겨울 하늘을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후안마이, 너의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머니에게 대신 사죄하며 용서를 빌었다. 가슴 깊이 맺힌 한을 풀고 남십자성이 보이는 따뜻한 고향 하늘로 어서 돌아가렴.”
최영훈 사회부장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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