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돋보기]‘투자 고수’들 다시 보기

  • 입력 2007년 10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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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산시영아파트 72m²형의 매매가는 9500만 원 선이었다. 전세금이 7000만 원 안팎이었으니 2500만 원만 더 주면 아예 소유권을 사 버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대부분은 집을 사는 데 인색했다. 외환위기로 집값이 폭락했던 쓰라린 경험을 한 탓이다.

하지만 당시 기자가 취재한 60대 투자자는 이 아파트를 한꺼번에 5채나 샀다. “전세금 비중이 너무 높아 이 상태가 지속되면 매매가가 밀려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합법적인 절세(節稅)를 하기 위해 임대사업자로 등록까지 했다. 5년이 채 못돼 이 아파트는 3억 원을 넘어섰다.

본보가 서울 강남에서도 ‘청약률 제로(0)’ 아파트가 나왔다고 보도한 9일, 기자는 두 통의 전화를 받았다. “미분양 난 아파트의 모델하우스 연락처와 위치를 소개해 달라”는 요구였다. 이유인즉 “그렇게 안 팔린 아파트라면 가격 할인 혜택이 있을 텐데, 강남에서 분양가보다 낮게 아파트를 살 수 있다면 나중엔 차액만 챙겨도 돈이 된다”는 것이었다.

집값이 너무 뛰어 버린 탓에 아파트를 2채 이상 갖고 있으면 양심불량자나 투기꾼으로 취급받는 세상이다. 아파트를 1채만 보유해도 강남에 있으면 의혹과 동경이 묘하게 뒤섞인 시선을 감내해야 하고, 그나마 6억 원이 넘으면 종합부동산세 등 징벌적 세금까지 내야 한다.

그러나 부자들의 태도는 과거나 지금이나 역시 달랐다. 남들이 뭐라 해도 수익이 난다 싶으면 과감히 투자하고, 남들이 호황에 취할 때도 아니다 싶으면 미련 없이 빠져 나오기 마련이다.

물론 불법이나 탈법적 투자는 지탄을 받아 마땅하고, 그로 인한 이익은 가차 없이 사회가 환수해야 한다. 하지만 계층 간 자산 격차가 벌어졌다고 해서 모든 부자를 경원시한다면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정직한 부자는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 중요한 건 그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스스로에 대한 위안을 삼는 당신은 부자가 될 가능성을 스스로 던져 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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