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권희]‘아줌마 눈물’ 뒤의 민주노총

  • 입력 2007년 7월 22일 19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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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계열사 유통매장에서 벌어졌던 ‘비정규직 대리전(戰)’이 장외(場外)로 옮아가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장기 점거농성 중인 노조원들을 경찰이 강제 해산하자 불매운동 등 준비해 둔 2단계 투쟁에 들어갔다.

민주노총은 이랜드 사태가 더 오래, 더 복잡하게, 더 치열하게 전개되기를 원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싸움’을 크게 벌이는 최대 목적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 아니라 민주노총 자체의 위기 극복인 것 같다.

민주노총 인터넷 홈페이지에 띄워진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한 50억 원 기금조성사업’은 그들의 속뜻을 짐작하게 해 준다. 민주노총은 ‘정규직 중심의 조직으로서의 한계 등 노동자 전체에 대한 대표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자체 진단하면서 ‘민주노총의 재창립에 맞먹는’ 특단의 조직화를 통해 비정규직을 흡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은 돈으로 전국에 센터를 설치해 비정규직의 조직화를 촉진하겠다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조직화인지 금세 알 수 있다.

결국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걱정은 화장술이 아닌가 싶다. 민주노총은 해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차별 철폐’를 주장해 왔지만, 실제로 차별을 없앤다면 산하의 정규직 노조들이 ‘절대 반대’라는 생얼굴을 보여 주지 않을까.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는 이미 드러날 만큼 드러났다. 작년 노동연구원의 조사 결과, 직접고용 비정규직에게 노조 가입 자격을 주는 노조는 15%에 불과했다. 비정규직도 받아 주자는 노조 규약 개정안이 대의원회 거부로 무산된 노조도 여럿 있다. 비정규직을 ‘갑자기’ 받아 준 경우는 대부분 파업을 앞두고 파업력을 키우려는 계산의 결과였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를 치고 나오는 또 하나의 속셈은 ‘아줌마의 눈물’로 국민의 지지를 얻어 보려는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총파업은 ‘투쟁을 위한 투쟁’이라는 비난을 받은 터다. 그러니 이랜드 매장의 비정규직 아줌마들을 앞세워 국민 지지를 구걸이라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며칠째 가족과 떨어져 쇼핑몰 점거농성을 벌여 온 비정규직 여성 근로자들이 결국 경찰에 잡혀가는 장면은 보기에 딱하다. 남성이 일하는 시간의 97%를 일하지만 임금은 63%에 불과한 현실 등 처우 문제를 국민이 새삼 인식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핵심은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다. 외환위기 이후 부쩍 증가한 비정규직 문제는 한쪽 주장대로 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해답은 고용의 유연성과 안정성 어느 쪽도 크게 해치지 않는 방안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등 구호만 외치고 있다. 문제 해결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회사 측과 대화하는 노조에 강경한 대응만 조언한다니 정해진 각본대로 장외투쟁으로 이끌려는 의도 아니겠는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는 큰 비용이 든다. 이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지가 관건이고 정규직 노조가 분담하지 않고는 조달이 거의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아줌마의 눈물.’ 노무현 대통령은 성급하게 닦아 주려다 상처만 키웠고 민주노총은 그 눈물을 ‘몸보신’에 쓰려고 한다. 민주노총은 사용자에게 항복을 강요하는 투쟁이 아닌, 고통 분담의 해법을 내놓을 때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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