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류지태]“대화가 필요해”

  • 입력 2006년 12월 16일 03시 00분


한 해를 돌아보며 느끼는 아쉬움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이제는 새로운 시간이 주는 설렘보다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오가 더 크게 인식되는 나이가 되고 보니, 주변의 편안하고 따뜻한 소식이 그립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수준은 많이 올라가고 있는 것 같지만 삶의 질은 그만큼 올라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가까워지고 사는 집의 가격이 엄청나게 상승하여도 도무지 마음이 넉넉해지지 않는 것은 사는 모습들이 더 삭막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갈등’ 정치로 삭막해진 사회

따지고 보면 내가 싫어하여야 할 이유도 없는 지역과 계층의 사람들을 마음속에 담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과거의 사람들을 미워하기도 한다. 또 가깝게 지냈던 나라들을 별안간 부정적으로 바라보도록 강요당하기도 하면서 갈등구조 속에서 편안한 느낌을 갖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나라의 정치적 분위기는 사회 전체의 분위기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일상적인 대화의 상당 부분이 정치적 사건이나 주제들을 벗어날 수 없다 보니, 이념적이며 지역적인 갈등의 주제들은 결국 무의식중에 우리 사고를 지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화 없는 노사갈등, 자신의 주장만을 강변하는 폭력적 시위, 이념이 다른 단체들 간의 비이성적 충돌은 현재의 정치적 행태의 축소판이나 다름 없다. 다른 사고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이념을 강요하는 정치권의 모습이나, 스스로 설정한 도덕적 우위의 선상에서 상대방을 매도하는 정당의 모습은 사회 세태의 모습으로 재현된다.

그래도 그저께 들은 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의 취임 연설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약해 보이면서도 내적으로 무척이나 강한 그의 연설 내용에서 유엔 개혁을 주장하면서도 열린 대화로 개혁을 달성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다.

신념에 찬 일방적 강요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는 아닐 것이다. 상대방과 대화하고 상호 이해를 넓히는 과정에서 갈등은 한층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다. 성석제의 소설이 즐거움을 주는 것도 시종일관 특정 주제를 설정하고 이를 독자에게 강요하는 사회 교훈적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생 그 자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저자 스스로 같이 즐기는 여유 있는 모습이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주제 없는 소설도 소설이 될 수 있다는 신선한 사고의 전환이 이념적 갈등 없이 소설에 다가가게 한다.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모든 시민이 같은 배에 타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어야만 시민 사이의 연대가 손상되지 않는다고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얼마나 많은 갈등이 우리 사회의 시민 연대를 손상해 왔는가를 생각하면 이제는 그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시민 연대를 회복하여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모두 같은 배 탔다는 연대감으로

그러나 이러한 기대를 정치권에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같은 배가 아니라 다른 배를 타고 있다는 인식만을 조장하는 정치권에 기대할 것은 거의 없다는 생각이다. 우리 정치의 수준보다 몇 단계는 높은 시민의식을 통하여서만 문제 해결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4·19민주혁명회와 교과서포럼이 보여 준 갈등 해결을 위한 대화와 화해의 모습은 이러한 새로운 출발을 위한 좋은 사례로 보인다. 성숙한 시민사회의 자율적 대화와 상호 이해의 의지에 의해서만 사회 갈등은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새해에는 사회적 분위기가 정치적 분위기를 바꾸는 변화의 모습을 희망한다. 갈등만을 만들어 내고 해결 방향을 찾지 못하는 정치권에 대화와 화해의 사회적 분위기가 신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기대하여 본다.

류지태 고려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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