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X파일]바람과 함께 사라진 프로펠러의 추억

  • 입력 2006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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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당탕탕.’

순간 모니터를 내내 주시하던 동료 하나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몸을 움츠린다.

마치 모니터에서 파편이 튀어나오기라도 한 듯한 갑작스러운 상황. ‘컨트롤룸(제어실)’에서 함께 있던 다른 시선이 일제히 ‘풍동(風洞)’ 시험실 내부를 잡고 있던 폐쇄회로(CC) 화면 쪽으로 향했다.

“어? 뭔가 허전한데.”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시험기간 내내 함께 돌던 무인기 로터(회전날개) 2개 중 하나는 보이지 않고 남은 하나만이 혼자서 천연덕스럽게 돌고 있는 게 아닌가.

누군가 재빨리 비상 정지 버튼을 눌렀다. 모든 시스템은 멈췄고 일순간 룸 안은 무거운 정적에 휩싸였다.

‘사고다. 그것도 큰 사고다.’

초속 15m의 강한 바람이 부는 풍동 안에서 분당 3600번을 회전하는 무인기 로터가 과도한 진동을 이기지 못하고 일순간 통째로 공중으로 치솟은 것. 로터는 마치 아이들이 양손을 비벼 날리는 장난감 프로펠러처럼 매끄럽게 떠올라 천장에 충돌한 뒤 다시 50m를 더 날다 떨어졌다.

물론 이미 모두가 이번 시험의 위험성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날개 끝에 달린 커다란 로터 2개의 힘으로 수직으로 떠올라 비행하는 틸트로터 항공기 제작에서 풍동 시험은 가장 핵심이자 까다로운 과정에 속한다. 다른 나라 전문가들마저 고개를 저은 기종이기에 사고 예방을 위한 ‘정지’ 작업에 모두가 신경을 쓰고 있던 터였다.

일순간 벌어진 상황에 모두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더구나 공개 시연까지는 불과 하루가 남았다. 그런 연구자들의 복잡한 심경을 모르는 듯 떨어져 나간 로터는 여전히 바닥에 누워 빙그르르 돌고 있었다.

엄청난 사고의 후유증은 오래 가지 않았다. 가만히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게다가 풍동을 마냥 독차지할 수도 없었다. 우리 말고도 예정된 다음 시험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 설치하는데 3일 이상 걸리는 시험 장치를 서둘러 들어내고 파손된 로터를 다시 다듬었다. 다음 풍동시험 순서까지 2개월 동안 전면적인 재정비가 필요했다. 또다시 고된 작업이 시작됐다.

그렇게 다시 몇 개월이 흘렀을까. 지난해 겨울 비로소 2011년까지 개발될 스마트무인기연구의 기틀을 마련할 중요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사고의 주범이던 로터 연결 부위를 튼튼하게 보강했고 안전점검도 몇 배 더 주의를 기울인 결과였다.

올여름도 무인기 연구자들은 풍동 안 신세를 면하기는 힘들 것 같다. 강한 바람 때문에 한여름에도 영하 15도까지 떨어지는 풍동에 들어갈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최성욱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스마트무인기사업단 책임연구원 wook@ka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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