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성낙인]언론시장 국민에게 맡겨 두라

  • 입력 2006년 7월 1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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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눈과 귀를 밝게 해 주는 언론은 다른 한편으로 항상 국가권력과 사회 제(諸)세력의 경원의 대상이 되어 왔다.

하지만 언론은 우리 역사와 영욕을 함께하면서 시대정신을 대변해 왔다. 나라의 민주화를 열망하던 시대에 언론은 민주주의의 파수꾼이었다.

5공화국 시절 대표적 악법이던 언론기본법은 6공화국과 더불어 사라졌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정간법을 대체하는 신문법(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 보장에 관한 법률)과 언론중재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사실 정간법은 외형상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반론권과 언론중재 관련 규정만 의미 있는 법률이었다. 그런데 새로 제정된 신문법은 신문의 자유보장이라는 명분 아래 오히려 신문시장을 ‘법의 잣대’로 재단함으로써 신문시장의 정상적인 흐름을 왜곡하고, 사상의 자유를 생명으로 하는 언론에 대해 규제적 시장 질서를 인위적으로 창출하려 하고 있다.

바로 그 언론법제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일련의 헌법적 판단을 내린 것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다. 헌재의 결정은 언론에 대한 규율의 범위에 대해 입법자에게 광범위한 입법재량을 부여한 취지로 이해된다. 그러나 언론규제법의 판단에 있어서 입법재량보다는 오히려 헌법이 추구하는 언론 자유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좀 더 천착하는 자세를 보였어야 했다.

신문법은 언론의 역사적 발전 방향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간 언론은 종이신문에서 공중파방송을 거쳐 이제 방송과 통신의 경계영역이 허물어지는 방송통신의 융합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법에서는 인터넷신문을 신문법의 적용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인터넷신문은 비록 신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실질은 최첨단의 통신매체이지 결코 (종이)신문일 수 없다. 하지만 통신으로서의 언론매체의 등장에 따른 언론시장의 새로운 변화에 국가실정법이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새로운 언론 기능을 즐기면서 이에 대한 합리적 좌표 설정을 못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의문이다.

신문법은 언론사의 겸영(兼營) 금지를 강화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언론시장은 급속하게 재편되어 가고 있다. 거대 자본에 의한 언론 겸영 현상이 보편화되어 가고 있다. 언론시장의 거대화와 언론기업의 독과점화는 자칫 언론의 생명인 여론 형성 기능이 특정 언론 매체에 의해 좌지우지될 소지도 있다. 하지만 언론시장의 다양성만을 논거로 설정된 겸영 금지가 자칫 한국 언론의 고립화, 왜소화를 초래해 외국 언론 자본에 의한 한국 언론의 피지배현상을 초래할 우려는 없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또한 신문, 방송, 통신이 급속하게 일체화돼 가는 과정에서 신문시장에 대한 지나친 통제가 결국 신문시장의 통신기능을 약화시켜 마침내는 신문시장 자체의 몰락을 재촉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현실적인 신문시장의 독과점 현상을 외면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신문도 주식회사라는 기업 형태로 존재하는 한 독과점에 따른 여론 쏠림 현상에 대해 항시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신문시장은 원칙적으로 국민 여론에 맡겨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좋은 신문, 나쁜 신문, 읽고 싶은 신문, 읽기 싫은 신문에 대한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따라서 신문시장에 대한 공권력의 개입은 자제돼야 함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신문시장에 대해 공정거래법상의 3개사 75% 조항보다 더 강력한 3개사 60% 조항을 설정한 입법 취지는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타당성을 가질 수 없다.

세계적으로도 기존의 신문시장에 대해 법의 잣대를 통하여 인위적으로 시장지배를 통제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새로운 시장 형성을 위하여 기존 독자들에게 특정 신문의 구독을 강제로 금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자칫 특정 언론사에 대한 의도적인 재갈 물리기로 오해될 소지를 배제할 수 없다. 신문시장의 독과점에 따른 폐해가 더는 용납될 수 없는 특단의 사정이 있다면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여 궁극적으로 공정거래법상의 관련 조항을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 원칙에 따른 규제를 더는 적용하지 못할 특단의 사정을 제시하지 못한 입법자의 잘못을 헌재가 위헌 선언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더욱이 국민의 사랑을 받는 신문에 대하여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금지한 것은 앞뒤가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

신문사의 영업 관련 사항을 공개하도록 규정한 입법자의 의도는 언론, 특히 신문의 공적 책임을 강조한 결과이다. 사실 그간 신문시장을 왜곡하는 많은 문제점이 적시되어 온 것 또한 신문사는 겸허히 수용해야 할 것이다. 이에 신문잡지부수공사기구(ABC)제도의 도입을 통한 언론사 스스로의 자정 노력도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언론사라 하더라도 상법상의 기업공시를 넘어서는 영업 비밀 또는 개인의 사생활에 속하는 사항까지 공개하도록 할 합리적 이유를 발견하기 어렵다.

언론중재법도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반론권의 실질적 제도화를 위한 언론중재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은 신속성, 경제성,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나름대로 평가받아 왔다. 그런데 언론중재위원회의 권한 강화로 인해 위원회가 권력기관화됐다는 사실을 가슴 아프게 새겨야 할 것이다. 그것은 중재기구, 그것도 언론 보도와 관련된 중재기구가 가져야 할 금도를 넘어서 언론 통제를 위해 일선에 나섰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중재기구는 중재할 뿐이지 결코 재판기관일 수 없다.

헌재의 한 차례 결정을 통하여 언론법제에 대한 위헌 논쟁은 한숨을 돌린 셈이다. 그러나 논의는 끝맺음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고 보아야 한다. 언론에 대한 지나친 규제는 결국 정책 당국자에게도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언론사의 자정 노력과 권력의 자기 절제를 통해 언론과 권력은 언제나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관계를 지켜 나가야 할 것이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한국공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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