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효종]그들끼리만 웃는 ‘댓글정치’

  • 입력 2005년 11월 23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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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은 정보 소통의 혁명이 진행되는 와중에 있으며, 이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도 정보기술(IT) 강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그래서인지 노무현 대통령도 정보화시대 국정(國政)의 첨병을 자처하고 있는 것 같다. 엊그제 APEC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바쁜 중에도 짬을 내 서너 개의 댓글을 정부 정책 홍보사이트 ‘국정브리핑’에 올렸고 20일에도 올렸다. 이런 모습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사소한 일에도 신경을 쓰며 국정에 전념하는 자상한 대통령의 모습일까, 아니면 좁쌀영감처럼 작은 일에 관심을 갖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일까.

대통령이 인터넷을 통해 댓글을 단다고 해서 국정을 소홀히 한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진의가 담겨 있는 대통령의 소통 행위인 만큼 국정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대통령이라고 해서 작은 데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청와대를 궁금해하는 초등학생의 간절한 소원을 담은 편지를 받고 그 소원을 들어 주기로 했다거나, 대통령 할아버지에게서 글을 받아 보고 싶어 하는 산간벽지 학생의 간절한 편지에 애정 어린 답장을 했다면, 잔잔한 감동의 물결로 다가왔을 듯하다. 그런데 이번처럼 집중적으로 올려지는 대통령의 댓글에 대해서는 왜 시선이 곱지 못한가.

문제는 내용에 있다. 18, 19일 올린 댓글 3개는 모두 언론 보도에 대한 공무원의 반박을 격려한 내용이고 20일 댓글은 자신을 칭찬한 데 대한 감사 댓글이다. 그 내용을 보면 화해와 통합보다는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을 키우는 것 같은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대통령이 ‘이해 절충자’보다는 ‘이해 당사자’로 나선 듯한 모습이다. 과연 대통령까지 국정홍보 전면에 나서야 할 만큼 절박한 사연이 있는 것일까. 야당에서는 국정홍보처를 없애라고 야단이고, 국정홍보를 맡고 있는 인사들의 공격적인 글이 계속해서 논란에 휩싸이는 등 상황이 심상치는 않다. 하지만 ‘국정홍보처 구하기’보다 더 시급한 국정 현안은 없는 것일까.

국정홍보처 관계자들의 태도도 문제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작정한 듯 언론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전의(戰意)를 다지고 있으니 딱하다. 국정에 관해 일반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실상이 있는 법인데 거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비판적 여론을 전하는 언론이 야속하다고 무작정 공격하니, 풍차를 향해 돌진한 돈키호테의 저돌성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그래서는 ‘싸움꾼’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홍보꾼’은 되기 어렵다.

물론 싸움을 하면 세인들의 주목을 받게 되고 홍보효과가 커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홍보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사향의 향내는 아무리 감싸도 밖으로 나가며 공갈빵은 아무리 외모가 근사해도 그 속의 허술함이 알려지게 마련이다. 광고보다 내실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국정홍보처가 하고 있는 걸 보면 국정의 실체를 국민과 소통하려고 하기보다는 마치 ‘플라톤의 동굴’에서 그림자로 홍보하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플라톤의 동굴’에서 사람들은 쇠사슬에 발이 묶여 실상을 보지 못한 채 벽에 비치는 그림자를 보며 살아간다. “박정희는 자동차, 노무현은 비행기”라는 홍보 내용을 보면 영락없이 ‘그림자 정치’다. 국정을 홍보하는데 ‘울리는 꽹과리’처럼 화려한 수사와 은유법을 동원하면서 스스로 통쾌해하면 무엇 하나. 참여정부가 ‘날아가는 신예기’라는 걸 행동으로 보여 주지는 않고 그림자로만 말하니 답답증만 불러일으킬 뿐 국정홍보가 먹혀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왜 하필 비행기일까. 인공위성도 있는데…. 우리에겐 어린 시절 즐길 만한 변변한 놀이기구가 없었을 때 벽에다 손으로 개나 소의 그림자를 그려가며 서로 싸우고 경쟁하기도 한 추억이 있다. 그 시절에는 자동차와 비행기도 모두 손 그림자로 그려가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진짜 자동차와 비행기가 된 것은 아니다.

21세기의 국정홍보를 손으로 벽에다 비추는 ‘그림자놀이’처럼 해서야 되겠는가. 정치건 국정홍보건 그림자만 보고 말하지 말고 실체를 보고 말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림자 정치’의 마술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박효종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정치학 parkp@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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