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노재만]‘科技인력 유출’ 보고만 있을건가

  • 입력 2005년 11월 22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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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용어에 ‘정상상태’라는 것이 있다. 특정 물질의 유입률과 유출률이 같아서 그 물질의 양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태다. 하지만 유입률이 적든지 유출률이 크든지 해서 균형이 깨지면 그 물질의 양은 줄어들게 된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인력이 이런 상태이다. ‘이공계 기피’와 ‘고급 두뇌의 해외 유출’로 인해 유입과 유출 모두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필자는 20년을 ‘중성자 물리’라는 분야에서 연구해 왔다. 매년 수천억 원씩 주고 수입하던 핵연료를 국산화하는 연구에 참여하는 등 국가 경제에도 기여했다고 자부한다. 이런 과학자가 느끼고 있는 과학기술 인력의 위기는 어느 정도이며, 그 원인은 무엇일까?

최근 동아일보가 여론조사 업체인 리서치랩에 의뢰해 국내기업의 연구개발(R&D) 인력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37%의 연구원이 외국 기업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10명 중 4명은 기회만 있으면 외국 기업으로 옮길 수 있다고 응답했다.

과학기술 인력 문제가 특히 심각해진 것은 외환위기 이후가 아닐까 생각한다. 과학기술계도 경제위기를 비켜갈 순 없었다. 구조조정이라는 명분 아래 R&D 인력부터 잘랐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하기보다는 당장 충격이 작은 방법을 택한 것이다. 위기 탈출에 많은 시간이 주어질 리가 없었기에 옥석을 가릴 여유조차 없었다.

핵자료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던 K 선배도 그때 연구소를 떠나야 했다.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었지만 나이가 많아 월급이 많다는 게 이유였다. 남아 있던 연구원들도 무사하진 않았다. 수많은 복지정책이 뒷걸음질을 쳤다. 퇴직금 중간 정산도 이뤄졌다. 그때까지 쌓인 퇴직금을 한꺼번에 주고 그 후에는 매년 그해의 퇴직금을 주는 방식이다. 연구원의 미래를 잘라 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해외 유학생의 현지 잔류’ 같은 예전의 방식이 아니라 ‘국내 인력의 해외 유출’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인력 감소가 시작되었다. 얼마 안 되는 우리 분야의 연구원 중에도 반수 이상이 외국의 유혹을 받았고 상당수가 우리나라를 떠났다. 국내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후배 K는 미국으로, 또 다른 후배 K는 노르웨이로 떠났다.

과학 기술계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양극화 문제가 발생했다. 현재 30대 중반까지의 연구원은 대부분이 정식 연구원 임금의 절반 정도를 받는 비정규직이다. 이들 중 유능한 일부 연구원은 또 외국으로 나간다. 서른이 넘도록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받아도 취업이 힘들고, 운 좋게 취업을 해도 충분한 보수를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미래도 불투명한데 누가 이 길을 택하겠는가? 어려운 수식을 들고 평생 씨름을 해야 해 3D 업종이라고 자조하는 과학 분야는 국내 유수의 대학이라도 대학원 학생 수가 항상 모자란다. 우리가 만든 빈자리를 동남아에서 온 외국 학생들이 채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한 연구실에는 중국 등 외국에서 온 학생이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새로 보충되지 않고 새어 나가기만 하는 과학기술 인력 때문에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오늘 우리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크게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경제위기 후의 양극화 문제 중 하나인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 다음 몇몇 엘리트 연구원이 아닌 과학기술 인력 전반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하기야 지금 같은 수급 불균형 상황이 계속되면 애걸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처우는 개선될 것이다. 그때까지 지급해야 할 사회적 대가가 엄청나겠지만 말이다.

노재만 한국원자력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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