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임성호]‘이념 깃발’ 접고 民心챙겨야

입력 2005-11-08 03:02수정 2009-10-0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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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국민은 별로 이념적이지 않다. 이념보다는 먹고사는 실용적 측면에 더 관심을 둔다. 국정도 이념노선에 이끌리기보다는 정책 중심으로 운영돼 실제적 혜택을 가져올 수 있기를 바란다. 국민이 이렇게 생각한다면 정부와 정치인이 취해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어느 한쪽의 이념성향을 국민에게 주입하고 국정을 그쪽으로 밀고 나가려 하지 말고 중도적 관점에서 정책 하나하나의 조율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상은 최근 공개된 동아일보 여론조사 결과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다. 사실 국민이 이념보다 실용적, 중도적 정책을 선호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 정도가 이처럼 클 줄은 몰랐다. 차기 대통령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응답자의 65%가 경제문제 해결 능력을, 20%가 사회갈등 해소 능력을 꼽았다. 압도적 다수가 사회 분열적 이념보다 번영과 안정을 불러올 경제정책 및 사회정책에 우선순위를 둔 것이다. 이념성이 비교적 강한 통일기반 확충 능력을 대통령의 덕목이라 말한 비율은 4%가 채 되지 않았다.

여론조사의 여러 다른 항목에 대한 응답도 일관되게 국민의 비(非)이념성을 보여 준다. 예를 들어 현 정부 출범 이후 개인적 경제상황이 나빠졌다는 응답(50%)이 좋아졌다는 응답(8%)보다 훨씬 많아 이념보다 정책 사안이 소홀히 돼 온 것에 대한 불만이 체감경기의 악화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한다. 1, 2년 전과는 달리 북한이 지원과 체제보장을 받아도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답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외교상 중시해야 할 국가로 과반수가 미국을 꼽았다.

물론 국민이 항상 현실 위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중대한 사건을 계기로 이념성이 상대적으로 강해지기도 한다. 2002년부터 작년까지 월드컵, 촛불시위, 미국의 이라크전쟁, 대통령 탄핵 등이 연속되며 우리 국민은 이념적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그것은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번 여론조사 결과가 시사하듯이 오늘날에는 국민 여론이 중도로 돌아왔다. 지난 몇 년간 이념적 국정운영이 성과를 냈는지에 대한 회의와 반성이 작용했을 것이다.

변화한 여론에 따라 국정운영도 변해야 한다. 이념 틀에 맞춰진 의제를 정부와 정치권이 하향식으로 국민에게 주입하며 선도하는 국정운영으로는 국민적 지지를 얻기 힘들다. 국민의 반발을 사고 사회 갈등을 심화시킨다. 그보다는 온건중도의 입장에 서서 정책 사안별로 다양한 의견을 상향식으로 수렴한 뒤 균형적으로 조정과 조율을 시도해야 한다. 거시적 이념형 접근보다 미시적 정책 위주의 접근이 필요하고, 국민을 깃발 아래 이끌기보다 다양한 수준의 사회적 대화를 촉진하며 자율적 의견수렴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집권 초기 승리에 도취해 이념적 국정운영을 밀어붙이다 여론의 역풍을 맞아 정책성과도 못 내고 의회선거 패배까지 겪었다. 그러나 집권 2기에는 이념 색을 상당히 빼고 중도적 정책 위주로 여러 입장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는 국정방식을 택한 결과 정책업적도 많이 내고 정치적 지지도도 높게 유지할 수 있었다. 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9·11테러 직후 이념투사로 돌변해 한동안 인기를 누리고 재선에 성공했지만 요즘 그의 이념적 국정운영이 여론에 부합하지 못하며 좌초 직전에 있음은 주지하는 바이다.

여론이 변하듯 국정방식도 바뀔 필요가 있다. 여론에 너무 영합해도 곤란하지만 여론이 이념성을 벗는 상황에서 국정이 이념 틀 속에서 경직돼도 큰일이다. 참여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국민의 협조하에 원만하게 국정수행을 마치기 위해 신경 써야 할 대목이라 하겠다.

임성호 경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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