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 입력 2005년 11월 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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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간에 함께 피를 나눈 혈맹(血盟)만큼 가까운 동맹은 없다. 남북한은 6·25전쟁을 통해 각각 미국, 중국과 혈맹이 됐다. 하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 남북이 혈맹을 대하는 것은 사뭇 대조적이다.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지난달 28일 평양을 방문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을 환영하는 연회에서 북-중 관계가 “피로써 맺어진 전우의 관계”라며 “중국 인민과의 형제적 우의의 정은 그 어떤 천지풍파 속에서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중국의 대북 지원에 대해 “중국 당과 정부와 인민에게 깊은 사의를 표한다”는 인사도 했다. 김 위원장이 이례적인 공식연설을 통해 북-중 혈맹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은 역시 혈맹인 한미관계를 되돌아보게 한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003년 5월, 취임 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코리아소사이어티 초청 연설에서 한미 동맹관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을 굳게 약속했다. 그는 “제가 여러 차례 같은 약속을 반복해도 아직도 저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며 “만약 53년 전 미국이 우리 한국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쯤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2년이 지난 지금 미국 내에선 한국에 대해 ‘은혜를 모르는 자(ingrate)’니 ‘역사적 망각(historical amnesia)’이니 하는 비판이 쏟아져 나온다. 한미동맹보다 대북관계를 중시하는 듯한 한국 정부와 한국의 ‘반미감정’에 대한 서운함의 표출일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남북한을 지원해 온 것은 물론 자국의 이익 때문이다. 하지만 한미관계만을 놓고 볼 때 그것이 미국의 지원을 평가절하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6·25전쟁 때 한국을 위해 미군 3만6940명이 목숨을 바쳤는데 한국이 미국을 위해 희생한 것은 얼마나 되느냐는 미국인들의 힐난엔 답변이 군색해진다. 한국이 잿더미 위에서 현재의 발전을 이룬 과정에서 미국의 도움을 받은 객관적 사실을 부인한다면 작은 일에도 ‘생큐’를 연발하는 미국인들이 ‘배은망덕’이라고 비난한들 할 말이 없다.

몇 년 전 미국에서 연수할 때 가족과 장거리 여행에 나섰다가 아이가 밤중에 갑자기 고열이 나고 의식을 잃는 위급한 상황을 맞은 일이 있다. 그때 기자가 머문 호텔의 한 직원이 당황해하는 기자를 대신해 앰뷸런스를 부르고 함께 걱정을 해줬다. 아이가 병원에서 밤새 응급 처치를 받고 상태가 호전된 뒤 그에게 감사 인사를 하자 그는 담담히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코리안인 것 같아 도왔을 뿐이다. 내 동생이 한국전쟁에서 전사했기 때문에 코리아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입대했던 동생은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들어간, 아주 똑똑한 젊은이였다….”

동생 이야기를 하던 그의 눈시울이 끝내 붉어졌다. 황망히 귀가하느라 그의 명함을 미처 챙기지 못해 이름은 가물가물하지만, 그의 노안(老眼)에 어린 눈물을 보며 가슴 저미는 연민과 고마움을 느꼈던 것만큼은 잊지 않고 있다.

예전 같지 않은 한미관계를 보며 그를 생각한다. 그 미국 노인은 지금도 어려움에 처한 코리안을 보면 기꺼이 도우려 할까.

한기흥 정치부 차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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