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주성/지금은 세금 올릴 때 아니다

  • 입력 2005년 9월 2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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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세금을 반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이 돈으로 국가가 나의 안전과 행복을 지켜 준다고 믿기 때문에 기꺼이 내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법으로 정해 놓고 강제로 거둔다지만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는 세금은 오래가기 힘들다. 나아가 그런 세금이 늘어날수록 정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 왕정시대의 민란이나 현대사회 정권 교체의 이면에는 기본적으로 무능한 정부가 내 돈을 가져가 낭비한다는 반감이 깔려 있다.

세금을 적당히 깎아 준다고 사람들이 무조건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나라 살림에는 돈이 들 수밖에 없다. 국민 비위 맞추며 세금 낮추다 경제를 망치는 정부보다는 돈을 좀 더 쓰더라도 일을 잘해 내 소득을 갑절로 만들어 주는 정부가 달갑다. 요컨대 세금은 절대 액수가 아니라 정부가 얼마나 그 값어치를 하느냐가 판단의 관건이다. 그런데 모든 정부가 이런 냉정한 계산을 하는 것은 아니다. ‘법으로 정하면 돈은 절로 굴러들어 온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그런데 세수는 조세제도 못지않게 경제활동에 좌우된다. 잘못된 세금은 경제를 위축시켜 세수를 오히려 줄일 수도 있다. 이때 돈이 아쉽다고 세금을 마구 더 올리다 보면 화살 맞는 폭군 신세를 면키 어렵다.

때로는 합리적인 세금도 국민의 저항에 부닥쳐 살아나지 못할 수 있다. 이때는 설득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가 국민을 설득하려면 신뢰가 앞서야 한다. 그래서 세금은 그 어느 정책보다도 여론의 향방이 중요하다. 사업하는 친구가 기막힌 투자처가 있다고 아무리 구구절절이 설명해도 전반적인 믿음이 가지 않으면 돈 꿔 주기 어려운 법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민생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믿음을 줘야 국민도 편하게 세금을 낼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우리 현실을 보면 세금에 관한 한 정부 정책이나 야당의 대안 모두 정상궤도를 이탈해 가고 있다. 요즘 경기가 지지부진하다 보니 세금이 잘 걷히지 않아 정부 재정의 적자가 불가피한 형편이다. 그래서인지 당장 소주세를 올리겠다고 한다. 음주운전의 폐해나 청소년 보호 등 독주에 세금을 높게 매길 논리는 무수하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 소주는 기쁠 때도 마시고 슬플 때도 마시는 ‘국민정서주(酒)’다. 가뜩이나 부동산 관련 세금 인상으로 경제주체의 심리가 위축된 상태다. 사실 현 정부의 부동산 세제 개편안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고 분배 정의에 부합하는 측면도 크다. 그런데 영향을 작게 받는 서민들조차 ‘세금 올리는 정부’라고 인상을 쓰는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정책 신뢰가 낮다는 얘기다. 부동산 투기를 막겠다는 일념은 좋지만 조세 수단을 동원하는 방식을 보면 솔직히 쓴웃음이 나온다.

국가재정의 큰 그림을 볼 때 정부가 조급하게 제시한 일부 세금 인상안은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 타오르는 불에 기름 붓지 말고 경제를 살려 세금이 절로 걷히게 해야 한다. 그 대신 일시적으로 재정 적자를 용인하면서 나라 살림 중에 방만한 구석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 행여나 부가가치세율을 올려 손쉽게 세수를 확보할 유혹이 생길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대담한 제안은 한편으로 민생을 안정시키고 다른 한편으로 불공평하고 불합리하고 불친절한 현행 세제를 충분히 손본 다음에 꺼낼 일이다.

야당 또한 정쟁이 아니라 민생을 위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세금폭탄’이니 하는 식의 선정적 구호나 세금 인하와 같은 달콤한 약속은 나라를 생각하는 수권 정당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최근 미국의 감세정책은 가격 유인이 먹히는 시장 환경과 재정 흑자라는 기반 위에서 가능했다. 재정 적자를 걱정해야 하는 우리 여건에서는 소비나 투자 유인 효과가 불투명한 세금 인하보다 불요불급한 정부 지출 삭감을 요구하는 것이 보수정당의 바른 선택이다.

한마디로 지금은 세금을 올릴 때도 내릴 때도 아니다. 당장은 탈세와 불공평을 초래하는 세제상의 구멍을 메우고, 적은 돈으로도 일 잘하는 생산적인 정부가 되는 데 힘써야 한다. 물론 경제가 살아나 소득도 늘고 세수도 늘어 국민과 정부의 살림살이가 모두 윤택해지는 것이 최선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전주성 이화여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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