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호택/아일랜드 모델,방글라데시 모델

  • 입력 2005년 7월 7일 00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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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는 이민, 기근, 내전과 이를 음울하게 묘사한 문학작품으로 알려진 나라였다. 1845년 여름 큰비와 습한 날씨 때문에 감자페스트가 번졌다. 주식인 감자의 흉작으로 100만 명 가까이 굶어죽었고 이후 10년간 200만 명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이때 조국을 등진 아일랜드 이민의 4세다. 아일랜드는 1980년대 중반까지 국가파산 상태로 치달았고, 대학 졸업자들도 줄을 지어 이민을 떠나던 나라였다.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아일랜드가 한 세대(世代) 만에 ‘켈틱 호랑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1995∼2002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8.8%다. 유럽 평균 2.5%의 3배 이상이다.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만6482달러로 독일 프랑스 영국을 앞선다.

경제 전문가들은 아일랜드 모델을 분석하기에 바쁘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퓰리처상을 세 번 받은 토머스 프리드먼은 최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써 보낸 두 편의 칼럼을 통해 아일랜드의 기적을 높이 평가했다. 가난한 농업국가가 어떻게 20여 년 만에 유럽연합(EU)에서 룩셈부르크 다음 가는 부자 나라가 되었는가.

첫째,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무상교육을 실시해 ‘준비된 노동력’을 육성했다. 이 나라는 2010년까지 과학 공학 분야 박사학위 소지자를 두 배로 늘리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둘째, 기업의 세금을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였다. 셋째, 기업이 근로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했다. 해고가 쉬울수록 기업들이 고용을 더 하는 ‘윈윈의 역효과’가 나타났다. 넷째, 노사정(勞使政)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파업을 줄이고 과도한 임금 인상을 억제했다. 다섯째, 영어 사용 국가인 점도 미국 투자를 끌어들이는 데 도움이 됐다.

그 결과로 실업률은 1980년대 18%에서 올해 4.2%로 떨어졌다. 세계의 10대 제약회사 중에 9개가 아일랜드에 공장을 두고 있다. 거대 반도체회사 인텔은 아일랜드에 4개 공장, 4700명의 종업원을 두고 고성능 칩을 생산한다. 이민 행렬이 멈추고 역(逆)이민이 시작됐다.

이정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은 한 논문에서 “몇 년 전 세계 각국의 행복도 조사에서 방글라데시 국민이 가장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성장보다 분배가 더 중요함을 시사해 준다”고 말했다. 분배도 좋지만 하필 방글라데시인가.

미 중앙정보국(CIA)의 월드 팩트북(Factbook)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의 문맹률은 57%다. 유아사망률은 1000명당 62.6명. 1인당 GDP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과 비슷하다. 1억4400만 명 인구에 실업률은 세계 최고 수준인 40%. 월드 팩트북은 방글라데시를 ‘가난하고, 인구가 과밀하고, 정부가 제 기능을 못하는 나라’라고 기술했다.

주관적 행복지수가 어떻게 산출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인이 방글라데시의 여건에서 행복해지기는 이미 불가능하다. 한국은행이 올 성장률 전망을 3.8%로 낮췄다는 ‘나쁜 뉴스’가 들려온다. 아일랜드 모델을 참고삼아 만성적인 저성장 탈출에 집중할 것인가, 양극화라는 말조차 꺼낼 필요가 없는 방글라데시를 계속 입에 올릴 것인가.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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