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영원]문화재 용어 쉽게 바꾸자

  • 입력 2005년 5월 31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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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제 봉황형 머리 장신구(金銅製 鳳凰形 頭髮裝身具), 서안(書案)….

박물관 전시실에서 만나게 되는 유물 이름이다. 이를 보고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런 것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경상(經床), 빗접(梳函·소함),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진단타려도(陳단墮驪圖)에 이르면 전문가를 제외하곤 그 뜻을 이해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한자식 문화재 용어가 어렵다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젊은이들의 불평이 특히 많았는데도 우리는 관습적으로 어려운 용어를 사용해 왔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새 박물관 전시실의 설명 카드를 쉽게 바꾸기로 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위에 쉬운 우리말 용어를 쓰고 아래에 한자식 용어를 함께 표기하기로 한 것이다.

‘경상’은 ‘절에서 불경을 놓고 읽는 작은 책상’으로, ‘빗접’은 ‘빗 등 화장도구를 보관하는 함’으로, 불교 회화인 ‘영산회상도’는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 부처’로 쉽게 풀어 쓸 예정이다. 그리고 조선시대 회화인 ‘진단타려도’는 ‘나귀에서 떨어지는 진단 선생’으로, ‘강산무진도’는 ‘끝없이 펼쳐진 강산’으로, ‘고사관수도’는 ‘물을 바라보는 선비’로 풀이한다.

얼마 전엔 문화재청에서 조선시대 왕릉의 이름을 쉽게 풀어 쓸 계획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예를 들어 건원릉을 태조 건원릉으로, 영릉을 세종·소헌왕후 영릉으로 바꾼다는 것.

박물관 관람객이나 문화재 애호가들이 점차 젊어지는 상황에서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된다.

1970년대 대학시절 접한 고고학 미술사학 용어는 무척이나 생소했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에 들어와 보니 박물관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더욱 그랬다. 필자의 전공인 도자기 분야의 설명 카드와 유물정리용 카드에 기재된 일본식 명칭이 특히 생소했다. 그 일본식 용어를 이해하기 위해 몇 개월 동안 도서실을 뒤졌지만 한국인이 쓴 글은 거의 없고 일본 학자들의 책만 서가에 가득했다. 이 경험은 전시유물 용어를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계기가 됐다.

이번 작업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2004년부터 박물관 안팎의 전문가들이 모여 오랫동안 검토하고 고민하고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학자들이 선호하는 용어와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용어가 너무 달랐기 때문에 그 간격을 좁히는 일은 힘든 작업이었다. 자신이 좋아하고 익숙한 용어를 쓰도록 관철하려는 연구자들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기도 했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여러 의견을 조율하고 정리해 국립박물관의 최종안을 이끌어 냈다. 쉬운 용어는 10월 28일 새 중앙박물관이 개관하면서 국민에게 선보일 것이다.

용어 개선 작업은 일반인도 우리 문화재를 쉽게 이해하고 즐겁게 향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전문 연구자들을 위해선 기존의 한자식 용어를 남겨 두었다. 이는 일반인들이 전문가의 영역을 넘나들 수 있도록 고려한 것이다.

문화재 용어 순화 작업은 확산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조선시대까지 한자 문화권이었기 때문에 한자를 완전히 잊고 살 수는 없다. 한자를 알면 우리 전통 문화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문화재의 한자식 용어는 선조들이 썼던 용어이기도 하다. 선조들은 문화재 하나하나에 깊은 의미를 담아 용어를 만들었다. 따라서 쉬운 우리말 용어를 만들어 나가는 일과 함께 기존의 용어를 잘 보존하고 다듬어 나가는 일도 필요하다. 그럴 때 우리 문화재 용어는 더욱 아름답고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김영원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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