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영]정보통신부의 진실게임

  • 입력 2005년 5월 28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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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

공정거래위원회는 KT와 하나로텔레콤이 가격담합을 했다며 1200억 원에 가까운 사상 최대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KT는 가격담합이 정보통신부의 행정지도에 따른 것이었다며 법정으로 가겠다고 한다. 마치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 왜 아버지가 회초리를 드느냐는 식이다.

진실게임은 1999년 4월 정통부가 하나로텔레콤을 시내전화 시장에 진입시키면서 시작됐다. 시내전화 부문에 경쟁체제를 도입한다는 명분이었다.

당시 유선전화 시장은 이미 침체기에 접어든 상태였다. 후발업체인 하나로텔레콤은 KT의 10%에 불과한 요금을 받으며 출혈영업을 계속했다. 그런데도 2002년 말 시내전화 시장점유율은 겨우 4.1%였다.

하나로텔레콤의 경영이 위기에 빠지자 정통부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게 됐다. ‘행정지도’가 시작됐다. KT가 시장의 일부를 넘겨주는 대신 하나로텔레콤은 요금 출혈경쟁을 하지 않는 방향이었다. 2002년 11월 정통부는 양사의 부사장을 불러 합의안에 서명하게 했다.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개입하겠다는 압력도 가했다.

그 후 양측은 2003년 6월 최종 합의에 이른다. KT는 연 1.2%씩 5년간 6%의 시장을 하나로텔레콤으로 넘기고 하나로텔레콤은 요금을 올린다는 것이 골자였다.

공정위는 이 과정을 가격담합으로 간주했다. 정통부의 행정지도는 2002년 11월까지 있었고 양사의 최종 합의는 2003년 6월에 이뤄졌으므로 행정지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KT는 2003년의 최종합의도 2002년의 행정지도를 이행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정통부가 행정지도를 한 것은 사실이므로 KT로선 억울할 만도 하다. 하지만 KT도 행정지도를 빌미로 편하게 장사를 할 수 있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못 이기는 척 행정지도를 따랐다고 볼 수도 있다.

정작 논란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이 사안에 대한 판단기준은 어느 쪽이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느냐는 것이어야 한다. 정통부는 어떻게든 하나로텔레콤을 살려 KT와의 경쟁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소비자에게 이익이라고 판단했다. 반면 공정위는 가격담합 행위가 지금 당장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했기 때문에 제재를 해야 한다는 쪽이다.

양쪽 부처의 판단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정부 부처끼리 의견이 다르면 논쟁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러나 안에서 치열한 논리 싸움을 벌였더라도 결론이 나면 밖에서 보이는 정부의 의견은 하나여야 한다. 규제 권한을 가진 두 부처의 의견이 다르면 기업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통부와 공정위는 사전에 논쟁을 벌인 흔적도 없고 결론이 없으므로 이견이 해소되지도 않았다. 똑같은 일이 재발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과징금 결정이 내려진 뒤 정통부는 “담합행위에 대한 판단은 공정위의 소관사항”, “심결 결과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이 있다”는 짤막하고 애매한 입장만 발표한 채 물러났다. 싸움은 KT가 하니 구경만 하겠다는 것인가. 자신의 행정지도에 책임을 지는 자세가 아니다.

일이 터지면 원인을 찾아 고치려고 해야 한다. 애꿎은 기업만 윽박지를 일이 아니다.

김상영 경제부장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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