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유일상]신문법 시행령의 함정

  • 입력 2005년 5월 12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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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0일 올해 초 국회에서 통과된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 보장에 관한 법률(신문법)’과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의 시행령 안을 발표했다.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라는 이 시행령들은 그 모법에서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왔던 것들이다.

무엇보다 신문법 자체가 언론자유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간섭과 신문시장에 대한 과잉 통제라는 등을 이유로 위헌소송이 제기돼 있는 현실이다. 언론중재법도 사회윤리의 대원칙인 언론인 개인의 윤리적 자율성을 해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다가 역시 헌법재판소의 합헌성 여부에 대한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10일 발표한 시행령은 그 모법을 뛰어넘어 더욱 노골적이고 구체적으로 ‘신문 길들이기’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골적인 ‘신문 길들이기’▼

우선 신문발전기금의 지원과 일간신문사 편집위원회의 구성을 연계시킴으로써 사실상 편집위원회 구성을 강제하고 있는 점이다. 편집위원회는 노사가 참여해 편집 책임자의 임면 등 10개 항을 논의하는 기구로 경영권 침해 소지가 크다. 구미 선진국들은 언론사를 ‘경향사업체’(언론사 정당 노동조합 사용자단체 등 사상적 색깔을 띤 단체)라고 보아 노사협의체의 구성을 다른 일반 기업체에 비해 훨씬 어렵게 하고 있다.

둘째, 편집위원회의 구성 방식을 구체적으로 정해 오히려 편집권 독립에 간섭하고 있는 점이다. 신문사업자 측과 취재 제작 근로자들이 각각 같은 수로 구성된 편집위원회에서 편집의 기본원칙과 윤리지침까지 망라하는 편집규약을 제정케 한다는 것은 전혀 현실성이 없는 얘기다. 근로자들은 신문 경영의 이익은 나눌 수 있지만 손실을 인수할 의사와 능력을 가지기는 어렵다. ‘언론중재와 피해구제법’에 따라 감당해야 하는 그 많은 손해배상을 누가 어떻게 떠맡아야 할까. 편집권 독립과 공유 여부는 각 사의 사정에 맡겨 놓아야 한다.

셋째, 신문발전기금의 기타 지원사업으로 구독료 지원 사업과 언론보도피해 구제사업 등 신문발전위원회가 정하는 사업을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그 성격이나 위원 구성이 애매모호한 신문발전위원회가 특정 신문의 구독료를 지원하고 언론보도피해 구제사업을 운영하며 나아가 위원회가 필요하다고 결정한 사업에 사실상의 세금을 쓰겠다는 것이다. 즉 전통적으로 사적 자본이 운영해온 신문 산업의 구조를 바꿔 정보와 지식을 생산 분배하는 경로를 정부가 관리하겠다는 발상의 표출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모법보다도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자의 ‘정보선택권’을 통제하고 신문의 자유와 다양성을 침해할 수 있다. 누구든 공짜 신문 보기를 마다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규정은 마땅히 헌법 합치 여부에 대한 판단을 받아야 한다.

넷째, 언론사 내에 고충처리인의 설치를 법으로 강제하는 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지만 언론중재법 시행령은 고충처리인의 활동을 독자들이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공표해야 한다는 의무까지 부과하고 있다. 이것은 언론매체 종사자의 자율성은 물론이고 고급지와 대중지가 병존하는 신문 현실과 독자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오만이다.

▼편집委, 편집권 침해▼

이처럼 10일 발표된 시행령은 모법과 더불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한마디로 모법과 이 시행령은 우리나라 언론을 모두 친정부 매체로 만들어 우리 국민이 오랜 세월에 걸쳐 투쟁하며 얻어낸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를 정권의 도구로 만드는 장치로 볼 수밖에 없을 듯하다.

유일상 건국대 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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