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희균]사법개혁, 국민합의 얻었나

  • 입력 2005년 5월 1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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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의 주역 로베스피에르와 당통은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법관을 없애버리고 형사사건에 배심제를 전격 도입했다. 1년여에 걸친 거국적 논쟁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배심제를 선택한 것이다. 이후 140여 년간 대륙법계에 속한 프랑스가 시행한 배심제는 실패하고 말았다. 무죄방면 비율이 25%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결국 프랑스는 가벼운 죄는 법관이 심판하고 중죄에 한해 직업법관 3명과 참심원 9명으로 구성된 참심법원이 심판하는 형태로 바꾸었고 무죄판결 비율은 8%로 낮아졌다.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생각하는 미국식 당사자주의의 한 축은 배심제가 될 모양이다. 안타깝지만 프랑스와 달리 미국 배심제가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말할 사람은 많지 않다. 무죄방면 비율이 높아서가 아니다. 전형적인 고비용 저효율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배심제를 택한 데는 공통된 이유가 있다. 하루도 더 앙시앵 레짐의 법관에게는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인식, 영국인 판사에게서는 정당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절박함, 즉 혁명적 현실성이 배심제로 가는 길을 열었던 것이다.

우리 경우는 어떠한가. 지금의 판사들에게서는 도저히 헌법이 정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국민적 합의가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해 헌법 개정 권력자로서 국민이 직접 답해야 한다.

1603년 11월 17일 월터 롤리 경은 영국왕 제임스 스튜어트를 몰아내고 스페인에 영국왕좌를 헌납할 음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배심원단은 단 15분 만에 유죄를 선고했다. 유죄평결에 쓰인 증거는 공범자 코브햄 경의 편지 한 장이 전부였다. 롤리 경은 마지막 순간까지 “코브햄을 데려와 직접 말하게 해달라. 그럼 기꺼이 죽겠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롤리 경은 참수됐고 훗날 코브햄 경은 증언을 번복하고 말았다.

이것이 우리 형사소송법 310조의 2, 공판정 외에서의 타인의 진술을 기재한 서류 또는 진술은 유죄 증거로 할 수 없다는 전문법칙의 기원이 된 월터 롤리 경 사건이다. 예컨대 검사가 피의자나 참고인을 신문해 조서를 꾸미고, 그 내용을 법정에서 유죄 증거로 사용하면 전문법칙 위반이다. 최근 사개추위가 검찰 작성 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방향의 개혁안을 내놓은 것은 전문법칙을 제대로 지키고 미국식 당사자주의를 구현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사개추위가 한 가지 놓친 것이 있다. 전문법칙보다 중요한 것은 형사피고인의 대질심문권 보장이다. 피고인에게 불리한 말을 할 사람은 검사든 누구든 다 법정에 나와 피고인 앞에서 하라는 게 대질심문권이고 이게 보장되지 않으면 당사자주의가 아니다. 그런데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일선 경찰도 시민도 증언을 하러 자주 법정에 불려나갈 각오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인자도 멀쩡히 풀려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잡아넣고 싶으면 법정에 나가 증언하고 피고인 측과 한바탕 말싸움을 벌일 작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식 당사자주의의 두 축은 배심제와 대질심문권의 보장이다. 결국 증인을 데려다 놓고 배심원 앞에서 증언케 하고 대질심문하게 하겠다는 것이 당사자주의이고 공판중심주의가 아니겠는가. 사개추위가 이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면 반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지 헌법 개정 국민투표에 준하는 국민적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거국적 토론이 있어야 한다. 사개추위만 열심히 추진하고 국민은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분쟁이나 흥미롭게 지켜보면서 따라갈 계제가 아니다.

김희균 성신여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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