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청 간부 등의 진술만을 토대로 했기 때문에 ‘반쪽짜리’ 감사라는 지적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광재 의원 개입 여부=감사원은 “이 의원의 연루 의혹은 없다”고 발표했다. 전대월(全大月·43) 하이앤드 사장이 찾아와 유전사업 지원을 요청하자 평소 알고 지내던 허문석(許文錫·지질학 박사) 한국크루드오일(KCO) 대표의 전화 연락처를 주고 만나보라고 한 게 전부라는 것이다.
김세호(金世浩) 당시 철도청장이나 신광순(申光淳) 차장이 “이 의원으로부터 유전사업을 하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했고 이 의원도 11일 감사원 조사에서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는 것이 감사원의 설명이다.
다만 감사원은 관련자들이 이 의원을 팔고 다녔을 가능성은 인정했다. 허 씨가 “이 사업은 이 의원이 추천한 것이며 사업 참여 시 북한의 예성강 임진강 모래채취사업을 철도청에 주겠다”고 철도청 왕영용(王煐龍) 사업개발본부장에게 제안했다는 것.
그러나 이는 철도청 간부들만의 진술일 뿐이다. 허 씨는 인도네시아에서 돌아오지 않아 조사를 못했고 애초 이 사업을 이 의원에게 설명하며 도움을 요청했던 전 씨는 도피 중이어서 한차례의 진술도 확보하지 못했다.
감사원은 3월 31일 허 씨를 불러 1시간가량 조사했으나 허 씨가 “인도네시아의 지진해일로 상황이 복잡하다. 내일 오겠다”고 해 그냥 돌려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허 씨는 4월 4일 인도네시아로 출국했다.
▽사례비만 120억 원?=감사에서 새롭게 드러난 사실은 철도청이 사업을 제의한 전 씨에게 처음부터 사례비 120억 원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는 점이다.
왕 본부장은 우리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전 씨에게 사례비를 지급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전 씨 등과 합작해 설립한 KCO 지분(42%)을 액면가 5000원의 20배로 매수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
그러나 철도청이 왜 전 씨에게 정확한 내용이나 지급 필요성에 대한 검토 없이 120억 원의 사례금을 지급하려 했는지, 또 전 씨는 왜 도중에 손해를 감수한 채 주식 대금만 챙기려 했는지는 의문이다.
또 왕 본부장은 “전 씨로부터 사례비 요구를 받고 당시 김 청장과 신 차장에게 구두(口頭) 보고를 해서 동의를 얻었다”고 진술했으나 김 청장과 신 차장은 이를 부인해 진술이 엇갈렸다.
감사원은 “지나치게 왕 본부장의 진술에만 의존한 것 아니냐. 이 의원이나 철도청의 다른 간부들과의 대질은 없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질은 안 했지만 철저히 진술을 비교했다”고 해명했다.
▽속전속결 사업 참여 이유는=철도청이 신규 사업에 진출하려면 철도청 차장 주재의 심의 회의를 거쳐 청장의 최종 결재를 받도록 돼 있다.
그러나 철도청은 단 한차례의 정책심의회의도 없이 지난해 8월 12일 당시 신 차장 주재의 본부장급 회의에서 사업 참여를 결정했고 같은 달 16일 차장 전결로 참여 방침을 확정했다.
전 씨 등이 8월 18일 페트로사흐 인수 계약차 출국하기 전에 참여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정책심의회의를 열 시간이 없었다는 게 왕 본부장의 진술이라고 한다. 왜 그렇게 서둘러 계약에 매달렸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또 신 차장과 왕 본부장은 감사원 조사에서 사업 참여를 결정한 회의 내용을 김 청장에게 구두 보고했고 구두 승낙을 받았다고 주장했으나 김 청장은 이를 부인했다.
▽석연찮은 대출 과정=유전업체를 인수하려면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먼저 전문기관을 통해 자산 실사를 한 뒤 대금을 지급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도 계약금을 페트로사흐에 먼저 지급한 뒤 실사하는 방식을 택했다.
우리은행의 대출 경위도 여전히 의혹으로 남아 있다. 우리은행은 당초 철도교통진흥재단의 유전개발사업권 인수에 관한 대출을 요청받고 조건부 여신 승인을 했다. 사업성 검토 자료의 신뢰성이 없으니 먼저 실사부터 한 뒤 대출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철도청장 명의의 확약서만 받고 대출금 인출이 가능하도록 여신 승인 조건을 변경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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