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770년 보스턴 대학살

  • 입력 2005년 3월 4일 18시 21분


코멘트
보스턴은 ‘미국의 중심’으로 불린다. 더 큰 도시들을 물리치고 보스턴이 이런 명성을 가지게 된 것은 독립의 역사에서 출발한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까지 고비고비마다 터진 중요한 사건들은 보스턴을 무대로 삼고 있다.

그 시발점은 18세기 후반의 ‘보스턴 대학살 사건’이다. 당시 영국 식민지 정부의 과도한 과세정책은 미국인들에게 불만의 대상이었다. 특히 최초의 식민정착지였던 보스턴은 반발의 중심지였다. 1770년 3월 5일 영국 주둔군 초소 앞에서 세금반대 운동을 벌이던 보스턴 주민들과 영국군 병사 사이에 벌어진 사소한 다툼이 대규모 충돌로 번지면서 영국군의 발포로 보스턴 주민들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1773년 영국 차(茶) 수입 문제를 둘러싼 ‘보스턴 차 사건’을 계기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더니 1775년 보스턴 근교에서 마침내 독립전쟁의 총성이 울렸다.

보스턴 대학살이 미국인들에게 던져주는 교훈과 의미는 양면적이다. 이 사건은 미국 자유정신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독립전쟁의 기폭제가 됐지만 미국 역사 왜곡의 시발점이라는 평가도 동시에 받고 있다. 영국군 발포로 사망한 보스턴 시민은 5명에 불과했지만 미국의 선동적 역사가들에 의해 ‘대학살(massacre)’로 명명됐다. 또 미국의 역사책들은 사건 발생의 원인을 조세 마찰이 아니라 영국의 냉혹성과 폭정에 초점을 맞춰 왔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다. 보스턴 대학살 이후 ‘미국적 가치’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국의 공식 역사에서 사라지거나 가공된 사건은 수없이 많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기념비의 주인공은 미국 독립영웅이 아니라 백인우월주의단체인 KKK단의 창시자 네이선 포레스트다.

그렇지만 미국의 역사인식이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미국의 진보적 역사학자들은 미국사회에서 자생하는 활발한 시민정신이 그릇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공식적인 역사에 의문을 품는 시민이 많아질수록 역사는 도덕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구려사 편입과 과거사 문제로 우리나라와 마찰을 빚고 있는 중국과 일본은 어떤가. 과연 이들 나라의 시민은 자국의 왜곡된 역사를 되돌아보고 시정할 만한 노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을까.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