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남영]의원數늘린다고 지역색 극복될까

  • 입력 2005년 2월 27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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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국정연설은 총론적으로 ‘국민통합’에 무게를 두고 ‘선진한국’이라는 미래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각론에서는 구체적인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의 소리도 있다. 특히 정치부문에서 노 대통령은 “지난 총선에서 지역별 의석은 지역별 득표수를 반영하지 못했다. 선거구 제도가 지역주의를 강화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사실상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제시했다. 매우 성급한 제안이다.

선거구 제도가 지역주의를 강화했다는 주장이 일견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과거 독재정권들과 ‘3김 시대’ 정치인들은 지역감정을 최대로 이용하는 정치 틀을 오랜 기간 구조화했다. 따라서 오늘날 정당체계가 지역정당 간의 경쟁으로 단순화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해도 지역주의가 없어지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 한국 사회의 지역감정에는 타 지역에 대한 배타적 적대성이 강화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배타성은 중대선거구제 아래서도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을 ‘왕따’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개연성이 높다. 예컨대 경상도 지역에서 열린우리당이, 전라도 지역에서 한나라당이 각각 철저히 배제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제3당, 제4당에 엄청난 프리미엄을 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지역주의는 유지되면서 선거 결과는 크게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정당들이 전국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지역정당 체제를 유지시키는 정치 행태가 먼저 척결돼야 한다. 지역별 스타 정치인 중심의 정당 운영과 특정 지역에 집중하는 선택적 선거전략이 우선 폐기돼야 한다. 그리고 정당 활동에서 이념과 정책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선거운동에서 합리성과 이성에 호소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타정치인들 간의 밀실협상을 배제한, 공정하고 합리적인 공천 과정의 확립이다.

노 대통령은 이런 정치관행과 행태를 지적하기보다 선거법이 잘못됐다고 주장한 셈이다. 만일 중대선거구 제도의 채택이 우연히 지역정당 구도의 완화로 연결된다 해도 그것이 잘못된 정치 행태를 고치는 것은 아니다. 정당과 정치인이 먼저 변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국민이 원하는 것이다.

국정연설에서 노 대통령은 현실 정치인들에게 함께 변화를 일궈가자는 통렬한 메시지를 전달했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지역감정 파고는 위험수위다. 상호불신, 적대감, 분노 등의 감정은 선거법 개정으로 치유될 수 없다. 지역정당 구도에 기생하는 지역 스타 정치인, 지역감정에 호소하는 전근대적 선거전략 등이 없어지지 않는 한 지역주의가 없어질 리 없다. 노 대통령은 이런 정치관행을 없앨 것을 강력히 주문해야 했다.

그 대신 노 대통령은 “지역구도를 해소할 수 있다면 국회의원 수를 늘려서라도 그렇게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또한 성급한 제안이다. 국민 정서상 국회의원 정수의 증원은 현실성이 없다. 노 대통령 입장에서는 18대 국회의원의 정수보다 17대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여야 한다.

17대 국회가 왜 최악의 국회였다는 16대 국회에 비해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가? 정치인들의 대폭 물갈이에도 불구하고 왜 국회의 생산성은 높아지지 않는가? 여기에는 대통령의 책임도 크다. 무리한 개혁드라이브, 자신이 규정한 소위 기득권 세력과의 끊임없는 갈등 과정이 국회를 정쟁의 장소로 전락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국회의 권위를 존중하고 자신의 잘못은 사과하면서 정치권에 대해 ‘더불어 생산적 정치풍토를 일궈나가자’고 주문했어야 한다.

이남영 숙명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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