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18년 영화 ‘유인원 타잔’ 개봉

  • 입력 2005년 2월 13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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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몸에는 영국 귀족의 피가 흐른다. 밧줄 하나에 매달려 밀림을 누빌 정도의 체력, 단도 한 자루로 맹수와 맞서는 담대함, 독학으로 여러 개 언어를 구사할 정도의 명석한 두뇌, 조각 같은 몸을 가졌다. 게다가 친절하고 유쾌하며 순수하기까지….

어느 하나 흠잡을 곳이 없는 완벽한 남성. 바로 ‘타잔’이다.

1918년 2월 14일 흑백 무성영화 ‘유인원 타잔(The Tarzan of the Apes)’이 미국에서 개봉됐다. ‘타잔’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영화는 애니메이션 ‘타잔과 잃어버린 도시’(1998)까지 모두 88개. 이 영화는 그 가운데 첫 작품이다.

20세기 영화사에서 타잔은 단연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였다. 세계 곳곳에서 어린이들은 ‘아∼아아’ 하는 외침을 흉내 냈고 줄에 매달려 나무를 타다가 떨어지기도 했다. 함께 등장했던 제인과 치타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어린이뿐 아니다. 옛 소련의 스탈린도 손님이 오면 종종 타잔 영화를 함께 봤다. 영화의 원작인 미국 작가 에드거 버로스(1875∼1950)의 동명 소설은 56개국 언어로 번역돼 25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자연과 인간의 대결이나 원시와 문명의 만남. 버로스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허먼 멜빌이나 조지프 콘래드 같은 작가도 이런 소재를 즐겨 다뤘다.

버려진 인간을 짐승이 키운다는 설정 역시 타잔이 처음은 아니다. 러디어드 키플링의 ‘정글북’(1894)이나 멀게는 로마의 건국 영웅 로물루스와 레무스 이야기가 먼저다.

그런데 유독 ‘타잔’만 한 세기 내내 대중들의 인기를 끌었다. 영화로, TV시리즈로, 만화로 끊임없이 리메이크됐다.

소설의 원작자 버로스는 한 번도 아프리카에 가 본 적이 없었다. 순수하게 머릿속에서 원시(原始)를 그렸다. 그래서일까. 배경은 밀림이지만 타잔은 야만인이 아니라 도시인의 이미지다. 수염도 없는 매끈한 얼굴에 세련된 매너를 가진….

“수많은 사람은 자신의 삶을 불만스러워한다. 하지만 스스로 주어진 환경을 개척해 나가는 건 현실의 고도로 조직화된 사회에선 어찌 보면 불가능하다.”(미국 작가 고어 비달)

타잔은 근대 도시인의 이룰 수 없는 꿈이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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