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남궁근]언제까지 사고를 안고 달릴건가

  • 입력 2005년 1월 4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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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출근길에 일어난 서울지하철 7호선 객차 방화사건과 그 대응과정을 보면 우리 사회가 과연 과거의 재난으로부터 제대로 학습해 실천하는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남아시아 지진해일을 보자. 무수한 사망자를 내며 섬 전체가 폐허가 된 아체 주가 있는가 하면, 사망자가 거의 없는 섬도 있다. 대대로 전해져 온 ‘바닷물이 갑자기 빠지면 반드시 큰 해일이 밀려온다’는 가르침에 따라 주민들이 신속하게 대피했기 때문이다.

위기대응 시스템의 부재로 192명이 숨지고 148명이 다치는 끔찍한 참사를 우리는 불과 2년 전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에서 경험했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가 그 참사로부터 얻은 교훈을 얼마나 실천에 옮겼는지 시험해 본 것과 같다. 대구 참사 이후 서울시는 2003년 4월 지하철 의자를 스테인리스로 교체하는 등 중장기 지하철 안전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화재에 대한 대응시스템은 2년 전과 비교해 근본적으로 개선된 점이 없어 보이는 것은 왜일까.

첫째, 관계자들 사이의 의사소통 시스템이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지하철 사고의 경우 초기 3∼4분 간 정확한 사태파악과 조치가 대응시스템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번 사고에서 승객과 기관사 역무원 그리고 도시철도공사 종합사령실 사이의 의사소통 시스템은 제대로 구비되지도, 가동되지도 않았다. 기관사는 자신이 통제하는 전동차에 불이 난 것을 오랫동안 모르고 운행했다. 역무원들이 화재 발생 사실을 알렸을 때, 종합사령실은 승강장에서 불이 난 것으로 잘못 알고 기관사에게 현장을 벗어나라는 어처구니없는 지시를 했다. 정보기술 분야에서만큼은 세계 일등이라는 우리나라에서 지하철 관계자들 사이의 의사소통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둘째, 전동차 의자 등 내부가 불에 잘 타는 소재로 된 구형 전동차였다. 스테인리스 의자라면 시너를 뿌리고 방화해 봤자 대형 화재로 확산되기 어렵기 때문에 방화시도는 원천적으로 차단될 수 있다. 당국에 따르면 의자를 스테인리스로 교체한 비율은 20%에 불과해 지지부진하다. 이것은 예산 상의 문제다. 안전을 지키려면 그에 상당한 비용이 투입돼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 화재를 초기 진압한 후 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은 전동차를 출발시켰다. 광명사거리역 역무원 3명은 소화기로 불길을 다 잡았다고 판단했으나 불씨가 살아나 객차 3칸을 모두 태운 것이다. 위기상황에서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평범한 상식을 소홀히 한 것이다. 역무원들이 이러한 사고에 대비한 화재진압 훈련을 제대로 받았는지도 의심스럽다.

넷째, 시민의 안전의식도 여전히 문제다. 이번 사고에서도 승객들은 객차에 불이 난 사실을 기관사에게 제때 신고하지 못했다. 광명사거리역에서는 역무원들이 대피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승객들이 대피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안전시스템과 시민의 안전의식 모두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음이 확인된 셈이다. 언제까지고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 의사소통 시스템이 없는 현장에서 신속 정확한 대응조치를 기대할 수는 없다. 당국은 재난대응 시스템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시민의 생명을 책임진 실무자들은 프로정신을 갖고 주어진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시민들도 당국의 탓만 하지 말고 안전불감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남궁근 서울산업대 교수·IT정책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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