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언론법안’]광고과다 판단 독자의 몫

  • 입력 2004년 11월 2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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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신문의 광고비율을 일률적으로 제한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입법례 역시 여당이 국회에 제출한 정기간행물법 개정안(신문법안)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신문의 광고 분량을 규제하는 방안은 이미 40여년 전 영국에서 논의됐으나, 정부가 직접 신문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법으로 광고비율을 제한하는 나라도 없지 않으나, 광고비율을 어겨도 정부의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정도일 뿐 과태료까지 물리지는 않는다.》

●英 ‘페이비언 그룹’의 무산된 제안

1961년 영국 신문업계에 근무하는 몇몇 ‘영 페이비언 그룹’ 회원들이 왕립언론위원회에 신문의 광고비율을 법으로 제한할 것을 제안했다. 페이비언(Fabian) 그룹이란 1880년대 영국에서 탄생한 점진적 사회주의 운동단체이며, 그중 젊은 사람들의 모임을 영 페이비언 그룹이라 부른다.

이들은 중간 규모나 소규모 신문이 더 많은 광고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제안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왕립언론위원회는 이를 거부했다. 신문의 자유경쟁에 의회가 개입하면 시장구조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법적 규제로 신문의 질을 높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 위원회의 최종 결론이었다.

●실패한 영국 모델을 본뜬 신문법안

신문의 광고 분량 규제를 추진하는 여당의 논리도 기본적으로 40여년 전 영 페이비언 그룹과 흡사한 측면이 있다. 독자권익 보호를 표방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광고 재분배를 통한 신문산업 재편을 의도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따라서 당시 왕립언론위원회의 거부논리는 여당의 신문법안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한마디로 시장주의에 반한다고 할 것이다.

여당의 신문법안은 ‘일간신문 편집인은 전체 지면 중 광고가 차지하는 비율이 100분의 50을 초과하지 아니하도록 편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문화관광부장관이 관리하는 신문발전기금의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는 불이익을 받도록 했다. 그와 함께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리도록 했다.

●광고 선택권은 독자에게 있는데…

신문에 광고가 지나치게 많으면 우선 독자가 짜증을 낸다. 그리고 그것은 부수 감소, 광고단가 하락, 중장기적인 수익 저하로 이어지므로 각 신문사는 스스로 광고 분량을 조절할 수밖에 없다. 신문의 광고 분량이 과다한지 여부에 대한 심판은 최종적으로 독자와 시장의 몫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사와 광고 비율을 적절하게 배분하는 것 역시 신문사의 양식에 맡겨두는 게 합리적이다. 이봉의(李奉儀·경제법학) 경북대 교수는 “광고 분량의 적정성은 전적으로 독자와 신문사가 판단할 일”이라며 “시장논리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을 법으로 강제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시장경제 국가에 이런 법은 없다”

미국은 신문광고 비율을 법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광고가 없는 정기간행물에 우편요금 할인혜택을 줄 뿐이다. 유럽도 신문광고 비율을 법으로 제한하지 않는 나라가 많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는 방송광고는 규제해도 신문광고는 규제하지 않는다. 독일은 신문과 방송 모두 광고규제를 하지 않는다.

신문광고 비율에 대한 제한규정을 두고 있는 국가로 프랑스 노르웨이 일본 등이 있으나, 한국의 신문법안과는 다르다. 프랑스와 노르웨이는 신문의 광고비율이 일정기준을 넘어서면 정부의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정도고, 일본은 같은 경우에 우편요금 할인혜택을 주지 않는 정도다. 김대호(金大浩·언론학) 인하대 교수는 “미디어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게 세계적인 추세인데 우리나라만 거꾸로 가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광고도 언론자유 영역에 속한다”

광고할 수 있는 권리도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 헌법재판소는 ‘광고물도 사상·지식·정보 등을 불특정 다수인에게 전파하는 것으로서 언론·출판의 자유에 의한 보호를 받는 대상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신문법안의 광고비율 제한조항에 ‘편집’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광고도 기사와 마찬가지로 편집의 영역에 속함을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방석호(方碩晧·언론법학) 홍익대 교수는 “광고비율 제한은 편집권을 침해하는 사전적 규제로 헌법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심재철(沈載喆·언론학) 고려대 교수는 “사회학자인 로버트 팍은 ‘광고를 보면 그 신문을 알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좋은 광고도 좋은 기사다, 통독 당시 동독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신문 기사가 아니라 광고였다”며 같은 견해를 밝혔다.

●선호도 낮은 언론사 피해 볼수도

광고비율 제한에 따른 경제적 부작용도 우려된다. 광고가 몰리는 신문사의 경우 법을 위반하지 않으려면 지면을 늘려 광고를 소화하거나 광고를 일부 거절해야 하는데, 단기간에 지면을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고 광고 거절은 불공정행위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법정비율을 지키기 위해 광고를 줄여야 하는 신문이 수익 보전을 위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광고단가를 올리거나 구독료를 인상하는 두 가지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광고주들이 광고 집행비용을 늘리지 않는 한 선호도 높은 신문사가 광고단가를 올리면 선호도 낮은 신문사의 광고 수주가 오히려 타격을 입게 된다. 그리고 구독료를 올리면 독자가 직접 피해자가 된다. 이상승(李相承·경제학) 서울대 교수는 “광고 분량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면 신문의 질이 떨어지거나 구독료가 올라 결국 소비자가 부담을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

각국의 신문광고비율 제한 여부
국가법 규정 여부내 용
미국×광고가 없는 정기간행물에 한해 우편요금 할인 혜택
영국×40여년 전에 일각에서 입법론을 제기했으나 의회가 개입하면 신문시장을 왜곡한다는 이유로 무산됨
독일×일체의 규제 없음
네덜란드×방송광고 분량에 대한 규제만 존재
이탈리아×
일본광고분량이 일정한 비율을 넘긴 신문사에 대해서는 우편료 할인 혜택을 주지 않는 데 그침
노르웨이신문사가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광고가 전체 지면의 50%를 넘지 않아야 함
프랑스광고 비율이 일정 기준을 넘을 경우 정부 지원 대상에서 배제
한국(여당 신문법안)―광고가 전체 지면의 50%를 넘지 않아야 함
―위반시 과태료 2000만원 이하 부과
―신문발전기금 지원 대상에서 배제

박현진기자 witness@donga.com

박 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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