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관/왜 한국엔 헤리티지재단이 없는가

  • 입력 2004년 8월 25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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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세대’인 필자의 한 친구는 최근 자신이 겪은 일을 ‘충격적 경험’이라며 털어놓았다.

일찍 귀가한 어느 날 중학생 딸이 눈물을 흘리며 책을 읽고 있기에 표지를 들춰 보니 ‘전태일 평전’(고 조영래 변호사 저)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1970년 11월 분신자살한 청계피복노조 근로자 전태일의 일대기. 그의 기억 속에는 1983년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란 제목으로 출간될 당시만 해도 금서(禁書)였다.

학교에서 권장도서로 지정된 이 책을 읽으며 “너무 불쌍하다”고 울먹이는 딸을 보며 그가 얻은 결론은 한가지였다.

“정말 세상이 바뀌었구나.”

이 475세대의 뒤늦은 자각처럼 우리 사회의 주류세력은 이미 상당부분 교체됐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스스로를 진보로 자리매김하는 사람이 절반에 이르고 학교는 이미 영향력과 목소리에 있어서는 전교조 교사가 다수인 느낌이다.

17대 총선에서 압승한 이후 여권 핵심인사들은 ‘개혁피로’와 ‘이념과잉’의 문제에 대한 지적에 최근 “과거사 청산과 개혁을 하라고 국민들이 만들어준 다수당 아니냐. 물러설 수 없다”고 자신감 넘치는 논리를 편다.

반면 보수진영은 ‘침묵하는 다수’ 이외에는 기댈 언덕이 별로 없는 듯하다. “나라가 큰일이다”는 걱정의 목소리는 곳곳에서 들리지만 진보와 개혁의 목소리에 묻히고 있다. 심지어 보수의 본산인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보수’는 천덕꾸러기 대접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의원은 “보수의 가치와 덕목을 설파하는 논쟁의 한가운데 서기보다는 어떻게든 ‘보수’라는 딱지를 피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게 한나라당의 현주소”라고 말했다.

문제는 한번 한쪽으로 쏠린 사회의 균형추가 단지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러시아 혁명이 대표적인 예. 러시아 귀족들은 1917년 2월 혁명(멘셰비키혁명) 직후만 해도 ‘보수 쪽으로의 반동(反動)’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더욱 조직화되고 급진적인 레닌의 볼셰비키 세력에 의한 공산화였다.

1973년 설립된 미국의 대표적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경우는 반대의 사례다.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이래 장기간 행정부와 의회가 민주당의 지배 아래 놓이자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세력(네오콘)들이 중심이 돼 설립한 이 재단은 자유주의의 이념을 창출·보급하는 중심 역할을 했다. 결국 1980년대 레이건의 시대와 1994년 중간선거 이후 공화당의 의회 지배를 만들어낸 원동력은 바로 이 같은 보수 세력의 준비와 노력이 가져온 결실이었다.

우리의 경우도 민간 차원에서 시장과 자본주의의 가치를 설파하려는 움직임이 최근 생겨나고 있지만 ‘정치적 풍향’에 흔들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999년 발족한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의 경우만 해도 최근 자유주의 재단 설립을 추진하고 있으나 기업들의 외면으로 결국 40여명의 참여 학자가 주머닛돈을 갹출하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이 모임에 참여하는 한 관계자는 “보수세력의 재건은 건전한 진보세력의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며 “역사의 시계추는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만 다시 돌아온다”고 강조했다.

이동관 정치부장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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