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덩샤오핑 평전’…덩샤오핑 탄생 100년

  • 입력 2004년 8월 20일 17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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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 평전
덩샤오핑 평전
◇덩샤오핑 평전/벤저민 양 지음 권기대 옮김/411쪽 1만8000원 황금가지

22일은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 그는 고립주의와 비밀주의 속에 잠자던 대국을 10여년 만에 세계경제에 편입시켜 승천하는 용으로 끌어올렸다.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늙은 도살자’로 그를 비난하던 목소리는 오늘날 중국의 번영을 칭송하는 소리에 묻혀 버렸다. 혹 그에게 바쳐진 일색(一色)의 꽃다발 속에서 우리가 그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7년 전 덩 서거 직후 출간된 이 책의 저자는 ‘그가 위대한 정치가로 기억될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경제 근대화의 공적 역시 ‘아무리 과장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그 이상을 넘어서는 ‘신화화’에 대해 저자는 명백한 선을 긋고 있다.

1929년 광시(廣西) 홍군 책임자가 된 뒤 1956년 공산당 네 번째 서열에 오르기까지 덩은 초고속으로 자신의 입지를 넓혀 나간다. 대부분의 전기 작가들은 그가 중일전쟁과 내전 기간에 탁월한 군사전략가로 연승을 거듭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의 시각은 다르다. 전쟁 중 실제 전략은 류보청(劉伯承)의 몫이었고 덩은 이 부대에 대한 정치적 통제 기능만 맡았다는 설명이다.

덩샤오핑은 문화대혁명 과정에서 장남의 등이 부러지는 등 큰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저자 벤저민 양은 마오쩌둥이 대약진운동을 거쳐 문화대혁명 등 극좌노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덩샤오핑의 책임도 도외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그에게 날개를 달아준 실제 요인은 마오쩌둥(毛澤東)의 총애였다. 덩은 이 총애를 받아내기 위해 최대한 마오 앞에 엎드렸다. ‘수완 좋은 정치꾼’이던 덩은 자기 보호야말로 정치생명의 원천임을 알았고 심중을 읽는 보고와 지시에 대한 신속한 집행으로 최고 권력자의 마음을 샀다.

잇단 당내 권력 다툼에서 그를 지켜 준 것도 힘의 풍향을 읽는 본능적 감각이었다. 처음 마오와 류사오치(劉少奇)의 갈등으로 시작된 1954년 ‘가오-라오 사건’에서 마오는 처음에 가오강(高崗)을 이용해 류를 견제하려 했다가 류와 흥정하기 위해 가오를 버렸다. 덩은 마오의 의도를 간파해 한 발짝씩 늦게 그의 행보를 따라갔고 이런 식으로 권력층 내 진공상태가 생길 때마다 그 속으로 한 걸음씩 솟아올랐다.

그렇다면 마오는 그의 어떤 재주를 높이 샀을까.

저자에 따르면 덩은 정치 외의 어떤 문제에 있어서도 전문가가 아니었다. 수많은 전쟁을 치렀지만 전술은 알지 못했다. 중국을 대표해 소련과 수정주의 논쟁을 벌였지만 공산주의 이론에도 정통하지 못했다. 경제 개방을 지휘했지만 인플레이션이 닥치자 ‘가격 난국을 타개하라’는 지시밖에 내놓지 못할 정도로 경제에도 문외한이었다. 실제 그의 재주는 ‘직감’에 있었다. 사람의 의중을 읽는 그의 직감은 상관인 마오를 흡족하게 만드는 보고의 기술로, 자아비판을 할 때도 핵심을 비켜 자리를 보전하는 운신의 기술로 빛을 발했다.

그의 가장 중요한 미덕은 자기가 있어야 할 시기에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억눌려 있던 개혁의 물결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던 1980년대에 그 물결을 따라 헤엄쳐 갔다”고 그의 미덕을 말한다. 차우셰스쿠가 죽자 공산당 수뇌부는 루마니아 ‘동란’의 필름을 입수해 함께 시청했다. 한 간부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강화해서 반동을 억누르지 않으면 저 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톈안먼 사태가 종식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덩의 반응은 훨씬 이성적이었다. “개혁을 수행하지 않고 인민들에게 혜택을 주지 않아 저 꼴이 되는 거야.”

사족. 덩의 탄생 100주년에 맞춰 서둘러 책을 펴낸 탓이겠지만 몇몇 결함이 눈에 거슬린다. 세 번째 부인 이름이 ‘주오린’ ‘줘린’으로 같은 쪽 안에서도 엇갈리며, 파리 노동유학을 뜻하는 ‘근공검학(勤工儉學)’ 역시 ‘근공검약’으로 잘못 표기된 것이 보인다. 원문의 오류일지 모르지만 일본의 항복일을 ‘8월 14일’(실제 8월 15일)로 쓰고 있고, 광시지역 홍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연도도 ‘1929년’ ‘1920년’으로 엇갈린다.

저자는 베이징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최근까지도 베이징 런민대에서 강의했다. 원제 ‘Deng:A Political Biography’(1997년).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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