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절반의 이혼'

  • 입력 2003년 12월 29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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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직장인들이라면 매 주말 한두 번은 결혼식에 가야 한다. 축의금만 보내도 되는 곳이 있지만 꼭 얼굴을 비쳐야 할 곳도 있다. 하객들은 새로 출발하는 부부에게 아낌없는 축복을 보내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곧 헤어져 홀로 지내게 된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다. 연간 30만쌍이 결혼하고, 절반인 15만쌍가량이 이혼하는 것이 작금의 세태이기 때문이다. 신혼여행에서 서둘러 파혼을 해버려 공들여 찍은 결혼식 기념사진을 찾아가지 않는 이들도 없지 않다고 한다.

▷지난해 한국에서 하루 평균 840쌍이 결혼하고 398쌍이 이혼해 결혼대비 이혼율이 47.4%에 달했고 곧 50%를 돌파한다고 한다. 현재도 미국(51%)과 스웨덴(48%)이 우리보다 이혼율이 조금 높을 뿐, 노르웨이(44%) 영국(42%) 캐나다(38%) 프랑스(33%) 독일(30%) 등은 우리보다 ‘이혼 후진국’이다. 제왕절개수술과 흡연율, 고아 수출과 교통사고율에 이어 한국의 이혼율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게 된다니 놀라운 일이다. 결혼 후 3년 안에 이혼하는 부부가 전체 이혼소송의 절반을 차지하고, 경제적 이유로 인한 이혼도 10년 전 2%에서 14%로 늘어났다.

▷이혼이 기혼자의 ‘절반의 선택’이 되어버린 셈이니 매사 조심스러워진다. 어쩌다 결혼이나 가족에 관한 얘기를 하다보면 자칫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꽤 매력적인 30대 중반의 독신 전문직 여성에게 “결혼생각은 없으세요?”라고 물었더니 대수롭지 않게 “갔다 왔어요”라고 재치 있게 응답해 되레 당황한 적이 있다. 혼자 지내던 이혼남이 보낸 청첩장을 받고 “잘하셨네요. 요즘 재혼은 흠이 아니지요”라고 덕담을 건넸더니 “사실은, 세 번째인데요…”라고 해 서로 멋쩍어 한 적도 있다. 자식을 결혼시킨 부모에게도 그 뒤의 일을 묻는 것은 실례라고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초혼(初婚)의 남녀와 그 사이에서 탄생한 자녀로 이루어진 ‘고전적 의미’의 가족은 천연기념물처럼 찾기 힘들어질지도 모르겠다. 최근 정부가 ‘부부의 날(5월 21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고, 이혼에 합의한 부부가 3∼6개월간 냉각기를 갖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도 이혼율을 줄여보겠다는 고심의 결과일 것이다. 물론 ‘불행한 결혼생활’보다는 ‘깨끗한 이혼’이 나을 수 있다. 하지만 ‘가벼운 이혼’마저 세태의 흐름으로 받아들여야 할 만큼 ‘결혼의 서약’이 가벼운 것은 아니잖은가. 미운 정 고운 정 쌓아가며 해로(偕老)한 이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해야 할 세상이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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