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절 청렴도가 뭔가. 금품이나 향응을 바쳐야만 관이 움직인다든가, 인허가 업무와 행정정보공개 등이 투명하지 않게 처리될 때 민원인은 “그 기관 썩었다”고 말한다. 부방위가 청렴도 조사를 하는 것도 이 같은 부패의 싹을 없애 민원인의 불만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런데 조사대상기관이 민원인에게 ‘이러저러한 조사를 하고 있으니 대답 잘하라’고 했다면 이야말로 또 다른 차원의 부패라 함직하다. 듣는 측에서는 그 어떤 금품요구나 불투명한 업무 처리 못지않은 압력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도로공사측도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조사기간 중 관련자들이 모여 민원인과 업체에 잘해서 좋은 평가를 받자고 다짐한 것뿐이다. 다른 기관이나 공기업도 마찬가지다. 홍보용품은 배포하지도 않았다”는 설명이다. 평소에 청렴했다면 조사기간이라고 유난 떨 리 없으련만 “아무리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도 시험 때는 더 열심히 하는 법”이라며 본뜻이 왜곡돼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이에 대해 부방위는 확인작업을 거쳐 지금까지의 조사결과를 무효로 하는 등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기관도 같은 ‘작업’을 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민원인들한테 잘 대답하라는 ‘로비’를 받은 적이 있는지 검증하겠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부방위가 내년 초 발표할 청렴도 조사는 믿어도 되는 걸까. 133개국 중 50위인 우리나라의 부패인식지수는 향상될 것인가. 지난봄 부방위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권력형 부패를 뿌리 뽑기 위한 고강도 처방’은 현재 실종상태다. 대통령 주변부터 여야 할 것 없이 수십억 수백억원의 검은돈이 무시로 오가는 판에, 한 공기업이 청렴도 높이자고 대책회의 좀 한 것이 무슨 대수랴 싶기는 하다. 정말 크고 막중해서 온 국민을 절망시키는 부패는 못 막으면서 ‘사소한’ 청렴도에 매달리는 부패방지위원회의 명칭이 아깝기도 하고.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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