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청렴도 높이기'

  • 입력 2003년 10월 30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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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인지 엽기스릴러인지 모르겠다. 부패방지위원회가 정부기관과 공기업을 대상으로 청렴도 조사를 하고 있는데, 한국도로공사 등이 갤럽의 질문을 받게 될 민원인과 관련업체에다 사전 ‘입단속’을 벌였다는 소식이다. 대책회의를 열고 부서장과 담당자가 민원인들을 세 번 이상 접촉해 협조를 구한다는 지침도 정했다고 한다. ‘용지보상과 관련해 비우호적 사람들에게는 홍보용품을 제공하라’고 했다니, 쉽게 말해 청렴도를 매수하려 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지난해에도 올해처럼 조사에 대비했다는 보도가 맞는다면 도로공사가 청렴도 상위등급이라는 평가를 믿어도 될지 혼돈스럽다.

▷대관절 청렴도가 뭔가. 금품이나 향응을 바쳐야만 관이 움직인다든가, 인허가 업무와 행정정보공개 등이 투명하지 않게 처리될 때 민원인은 “그 기관 썩었다”고 말한다. 부방위가 청렴도 조사를 하는 것도 이 같은 부패의 싹을 없애 민원인의 불만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런데 조사대상기관이 민원인에게 ‘이러저러한 조사를 하고 있으니 대답 잘하라’고 했다면 이야말로 또 다른 차원의 부패라 함직하다. 듣는 측에서는 그 어떤 금품요구나 불투명한 업무 처리 못지않은 압력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도로공사측도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조사기간 중 관련자들이 모여 민원인과 업체에 잘해서 좋은 평가를 받자고 다짐한 것뿐이다. 다른 기관이나 공기업도 마찬가지다. 홍보용품은 배포하지도 않았다”는 설명이다. 평소에 청렴했다면 조사기간이라고 유난 떨 리 없으련만 “아무리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도 시험 때는 더 열심히 하는 법”이라며 본뜻이 왜곡돼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이에 대해 부방위는 확인작업을 거쳐 지금까지의 조사결과를 무효로 하는 등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기관도 같은 ‘작업’을 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민원인들한테 잘 대답하라는 ‘로비’를 받은 적이 있는지 검증하겠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부방위가 내년 초 발표할 청렴도 조사는 믿어도 되는 걸까. 133개국 중 50위인 우리나라의 부패인식지수는 향상될 것인가. 지난봄 부방위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권력형 부패를 뿌리 뽑기 위한 고강도 처방’은 현재 실종상태다. 대통령 주변부터 여야 할 것 없이 수십억 수백억원의 검은돈이 무시로 오가는 판에, 한 공기업이 청렴도 높이자고 대책회의 좀 한 것이 무슨 대수랴 싶기는 하다. 정말 크고 막중해서 온 국민을 절망시키는 부패는 못 막으면서 ‘사소한’ 청렴도에 매달리는 부패방지위원회의 명칭이 아깝기도 하고.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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