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어린이와 시위

  • 입력 2003년 10월 8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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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소년 라미 자말 알두라(12)는 아버지와 함께 중고차 시장에 다녀오던 길에 시위대에 섞이게 됐다. 이스라엘군의 총탄이 난무하는 속에서 부자는 벽돌담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공포에 파랗게 질린 소년은 아버지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어린아이다. 쏘지 말라”는 아버지의 절규. 그러나 무심한 총탄은 소년의 배를 관통했고 소년은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2000년 9월 30일 프랑스 2TV가 방영한 이 장면에 세계는 경악했다. 소년의 어머니는 통곡하며 말했다. 언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고….

▷이스라엘과의 분쟁이 있을 때마다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은 어른들과 함께 거리시위에 참가하는 일이 잦다. 알두라도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다. 이날 알두라가 아버지를 따라 시장에 갔던 것도 아들이 시위에 끼어들까 걱정한 어머니가 일부러 그렇게 하도록 한 거였다. 세상의 모든 분쟁에는 저마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겐 분쟁 당사자 양쪽의 논리를 균형감 있게 인식할 능력이 없다. 대개 자기 가족이 속한 편을 맹목적으로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어른들 싸움이 격화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간다. 학교에 못 가게 되고, 보호 없이 방치되거나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도 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도 시위현장에 청소년이나 어린이가 등장하는 일이 많아졌다. 지난해 전국을 들끓게 했던 여중생 사망 규탄시위가 그랬고, 최근 방사성폐기물처리장 문제로 바람 잘 날 없는 부안 시위가 그랬다. 이런저런 촛불시위에는 어김없이 어린이 청소년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미군 철수’를 외치는 아이들이 그 말의 복잡한 정치경제적 함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혹자는 ‘아이들은 이런 일을 통해 민주주의를 배운다’고 옹호하지만, 민주주의란 다양한 입장을 함께 계량해 타협을 이뤄내는 것이지 일방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게 아니다.

▷정부가 폭력성을 띤 시위나 집회에 청소년이나 어린이를 강제로 동원하지 못하게 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잘하는 일이다. 이로써 우리 아이들을 위험하거나 논란이 많은 시위에 ‘방패막이’로 내세우는 일이 없어졌으면 한다. 하지만 법이 얼마나 현실에 부합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합법, 불법의 구분에 애매한 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른들의 생각이다. 아이들을 시위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이제 우리의 아이들은 제 있을 곳에 있어야 한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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