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유 대리는 어디에서…' 장르 파괴한 발랄한 상상

  • 입력 2003년 10월 3일 17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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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치은은 98년 등단한 뒤 최근까지 모습을 공개하지 않고 ‘얼굴 없는 작가’로 지내왔다. 이치은은 필명. 아직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 사진제공 민음사

작가 이치은은 98년 등단한 뒤 최근까지 모습을 공개하지 않고 ‘얼굴 없는 작가’로 지내왔다. 이치은은 필명. 아직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 사진제공 민음사

◇유 대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사라졌는가?/이치은 지음/332쪽 8500원 민음사

작가 이치은(32)이 5년 만에 두 번째 장편 ‘유 대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사라졌는가?’를 내놓았다. 1998년 ‘권태로운 자들, 소파씨네 아파트에 모이다’로 22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는 새 장편에서 탐정소설, 공문서, 르포 등의 다양한 텍스트 실험을 통해 신세대의 발랄한 상상력을 직조(織造) 또는 혼방(混紡)하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 유지형 대리와의 가상 인터뷰를 통해 작품의 이모저모를 알아보았다.

―유 대리가 맞나, 소설에서 황당한 일을 연이어 당했는데, 간략히 소개해 달라.

“대기업 사원으로 일하던 중 총수가 모친상을 당해 장례식장의 주차 안내요원으로 동원됐다. 그늘을 찾다가 우연히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길을 잃었는데, 우연히 총격전에 휩쓸리게 됐다. 순간 섬광탄에 정신을 잃었다.”

―그렇지만 당신은 저택 안의 한 방에서 둔기로 상관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지 않았나.

“휴,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강 과장의 시체 옆에 있었고 총격전의 흔적 같은 건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니 내가 횡설수설한다고들 할 수밖에. 하지만 내 말은 모두 사실이다.”

―당신의 얘기는 사실로 밝혀졌다. 당신은 경시청과 재벌의 음모에 걸려든 거고, 복제된 제2의 건물로 감쪽같이 옮겨져 누명을 쓴 거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글쎄, 그거야 작가에게 물어볼 일 아닐까. 어쨌든 이 일을 겪은 뒤 내가 느낀 바는 이렇다. 개인의 안전을 보장해 준다고 믿어온 사회적 장치들이 실제로는 거대한 통제장치였다. 경시청과 재벌이 연합한 체제 시스템은 나를 감쪽같이 제거하려고 했으며 실제로 나의 사회적 자취는 지워져버렸다. 이런 경험이 고도 정보화 사회에 살고 있는 당신들에게 닥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묻겠다. 당신은 왜 이런 가상 인터뷰 형식으로 기사를 쓰나.”

―말 잘했다. 소설의 5부는 각종 공문서가 파일 형태로 나열돼 있고, 7장은 기업체 사사(社史)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르포 문장으로 채워져 있다. 작품 전체가 이렇게 잡다한 텍스트 형식의 나열로 돼 있으니, 이런 작품을 소개하는 텍스트의 형식 또한 달라질 수밖에…. 이젠 내가 물을 차례다. 이런 다양한 형식의 텍스트 실험으로 무엇을 의도했는가.

“왜 작가에게 물어볼 말을 자꾸 내게 묻나. 나는 주인공일 뿐 아닌가.”

―발뺌하지 말라. 7장의 르포를 보면 경시청에 의해 ‘유지형’으로서의 존재가 지워진 당신은 ‘이치은’이란 반도체 전문가로 새 삶을 살게 된다. 작가 이름이 이치은이니 당신이 바로 작가 아닌가.

“이름이란 큰 의미를 갖지 않는, 단지 기호일 뿐이다. 이런 실험이 무엇을 의도하는가에 대해서는 문학평론가 박철화의 말을 소개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이치은의 새로운 소설은 기존 소설의 하위 장르를 뒤섞어가며 새로운 형식을 선보이고 있다.…덧없는 인간과 세계와 또한 말(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을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질문들, 그 질문들이 만드는 빈 공간의 공명을 통해 오래간만에 현실과 말 사이의 역동적 긴장이라는 소설의 존재 이유가 밝혀진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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