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동주/"우찌 살꼬…우찌 살꼬"

  • 입력 2003년 9월 15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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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매미’라는 이름은 북한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그 매미가 내가 사는 경남 사천 땅을 유린했다. 태풍이 상륙한 사천 앞바다는 물길 수려한 한려해상국립공원이다. 그 바다 저편에 남해가 마주보고 떠 있다.

올여름 남해군과 사천시 주민들은 두 지역을 잇는 거대한 다리공사를 완공하는 기념행사를 두고 서로 유리한 다리 이름을 주장하면서 집단적인 갈등을 빚었었다. 두 쪽 모두 옳지 못했다. 태풍 ‘매미’는 두 지역 사람들을 잔혹하게 꾸짖었다. 포구에 매어 둔 배들이 해일에 떠밀려 바닷가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논까지 와서 나뒹굴고 있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폐허의 농어촌 안타까운 오열 ▼

매미가 오기 이틀 전 저녁에 장군(張君)이 인사하러 왔다.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그는 고향에 온 걸음이었다. 수재 소리 듣고 자란 30대 후반의 그는 ‘한국 사회에 지쳤다, 한국을 포기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강남지역의 집값 폭등 양상을 바라보면 고향 사천 땅 농촌사람들 삶이 사람 사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 그는 매미가 상륙하던 12일 사천공항에서 임시 운항하는 비행기를 타고 급히 서울로 떠났다. 그가 떠난 몇 시간 뒤에 매미가 그 불쌍한 고향 마을을 짓밟아 버렸다.

폐허로 변한 곳에 남겨진 사람들 입에서는 “살길이 막막하다, 차라리 죽어 버렸으면 좋을 걸,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없다”는 말이 신음처럼 새어나온다. 농어촌 주민들은 빚더미에 짓눌려 산 지 오래다.

쌀 개방 압력은 무서운 불안이다. 여섯 달째 내린 비로 농사는 흉년이고 고추는 썩어 빠졌다. 수확을 앞둔 벼를 갈아엎는 농민의 얼굴엔 분노도 없다. 배 사과 단감 키위며 호박까지도 썩어 문드러진다.

바다농사도 절망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적조는 올해도 어김없다. 거대한 바다에 통통배 타고 다니면서 황토 몇 줌 뿌려서 해결될 적조가 아닌 줄 알면서도 그 짓밖에 할 수가 없다. 가두리양식장 고기들이 떼죽음 당하고, 빌린 돈 원금과 이자는 지붕 꼭대기에 걸터앉았다. 그 위에 태풍이 왔다. 해마다 한두 번씩 겪는 태풍이라 여겼다. 하지만 매미는 두 번 다시 만나서는 안 될 악령이었다. 와룡산 기슭 과수원들은 황폐해졌다. 비바람에 무너져 수북하게 나뒹구는 상한 과일들은 마치 나치수용소 독가스실에서 처형된 해골들처럼 느껴진다.

여름 내내 그리도 어민들 속을 썩이던 양식장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어촌 마을도 방파제도 원폭 당한 히로시마 풍경이다. 온 사방이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돌변했다. 쓰레기더미 헤치고 다니면서 허리 굽은 노파들이 “우찌 살꼬, 우찌 살꼬” 오열한다. 바닷가에 떠밀린 양식장 고기들을 포식하는 갈매기 떼는 가련한 농어민들을 오직 내년 총선 때 어떻게 속여 표를 훑어낼 것인지만 궁리하는 더러운, 정치한다는 자들과 닮았다.

마을 앞을 흐르는 강둑 곳곳이 무너져 논이 황무지가 되었다. 지난해 태풍 때 무너진 제방을 고친다며 올봄부터 중장비가 꾸물대더니 또 무너졌다. 거의 해마다 반복되는 공사다. 그런데도 어김없이 무너진다. 왜 제대로 고치지 못하는가? 그 많은 예산 다 어디 낭비하고 제방 하나 제대로 쌓아서 관리하지 못하는가? 그게 어디 제방뿐인가? 국가예산이니 공금이니 하는 것들은 제대로 관리했는가? 도둑놈들. 새로 낸 도로며 제방은 모두 탈이 났다. 난개발과 즉흥적 발상 탓이다. 농촌은 그렇게 죽어가고 있고, 이번 태풍은 그 죽음의 시기를 좀 앞당긴 것일지도 모른다.

▼제방하나 제대로 못쌓는 나라 ▼

이 처참함은 우리 마을 사람들의 삶이요 마음의 모습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 앞에 놓인 이 참담한 현실은 우리가 짚고 다시 일어서야 할 땅이며 쓸쓸한 등 기댈 유일한 언덕 아닌가!

그래도 살아야 한다. 사는 날까지는 이 걸음으로 살아야 한다. 저 송지 들판에 가을이 오고 있지 않는가. 그래도 가을만 한 이웃이 어디 있던가. 서로 손잡아 다독이며 다시 일어서야 한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

정동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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