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253…입춘대길(14)

  • 입력 2003년 2월 26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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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령은 소년이 등을 보이며 달음질쳐 사라지는 한순간의 모습에 눈물을 글썽였지만 왜, 무엇에 마음이 흔들렸는지 자신도 설명할 수 없었다.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복조리를 손에 든 채 마당 연못 앞에 웅크리고 있었다.

“고기.”

그 말을 듣고 얼음장 아래로 눈길을 던지니 붉은색과 금색 잉어가 헤엄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빛의 상태가 이상하다. 너무 밝은 것일까, 너무 어두운 것일까, 풍경이 갑자기 잠들어 버린 것 같다.

“일본 잉어야, 비단잉어.”

“비딴잉어.”

벚나무, 모과나무, 느티나무, 너도밤나무, 낙엽이 지고 난 나무는 모두 아주 비슷하다. 어쩐 일일까. 누군가의 입김으로 뿌옇게 흐려진 유리 너머로 보이는 것 같다, 으음, 내 눈으로 보고있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누군가의 꿈 속에 있는 것 같다. 눈꺼풀은 내려와 있는데 눈알을 움직여서… 누군가가 꿈 속의 나를 보고 있다… 아이고, 졸음에 질질 끌려 들어갈 것 같다… 졸려워, 미령은 거미줄을 걷어내려는 듯이 머리를 흔들고 옆에 서있는 딸이 맨발이라는 것을 깨닫고 안아 올렸다.

“아이고, 맨발이네. 자, 두루마기를 입고 강변에 널뛰기를 보러 가자.”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마당에 나타난 종업원이 미령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나서 빗자루질을 시작했다.

“오늘은 몇호실이나?” 미령은 물었다.

“17호실, 전부 차있습니다. 만실이에요. 군청내무과장인 고바야시씨, 곡물검사소장인 이구치씨도 묵으십니다.”

“식사는 손님들이 원하시는 것을 여쭤보고 일식이라고 말씀하셔도 한식이라고 말씀하셔도 대접할 수 있도록. 떡국과 부침개와 식혜와 수정과는 얼마든지 드리도록 조리장에게 전해두세요. 나는 잠깐 나갔다올게요. 영남루쪽에 있을 테니까 급한 일이 있으면 부르러 와요.”

“다녀오세요.”

미령은 딸에게 새빨간 두루마기와 솜저고리를 입히고 자다가 엉클어진 머리를 손빗으로 빗어주고서 귀덮개가 달린 모자를 씌우고 여우목도리를 두르고 고무신을 신겼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반복되는 일 속으로 도망쳐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업빠! 업빠!” 소진이 만세를 부르는 모습으로 몸을 부닥쳐왔다.

“업빠는 안 된다. 한참 걷고서 배가 고파지지 않으면 맘마를 많이 먹을 수 없다. 얼른 손을 잡자. 엄마가 노래를 불러줄게.”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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