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미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동맹인 우리가 이를 외면하기는 어렵다. 요즘처럼 양국관계가 어수선할 때 미-이라크전에 적극 동참함으로써 한미동맹 체제를 새롭게 다지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젊은이들을 위험한 전쟁터로 보내는 일은 반드시 국회 동의 등 국내적 절차를 거쳐야 하는 사안이다. 총리의 말 한마디로 결정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미-이라크전을 둘러싼 국내외 여론도 고려해야 한다. 최근 독일 프랑스 러시아가 미국의 일방적인 군사행동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확인하는 등 반전(反戰)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고, 이라크는 유엔의 무기사찰에 적극 응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럴 때 에너지원 수입의 대부분을 중동지역에 의존하는 우리가 섣부르게 누구 편임을 자처하고 나서는 것이 얼마나 국익에 도움이 될지 생각해볼 일이다. 더욱이 지금은 한가롭게 해외파병을 논하기보다는 당장 ‘우리 발등의 불’인 북핵 문제에 전념해야 할 때가 아닌가.
정부의 현명한 처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가 아무 대책없이 있다가 미국의 요청을 받고 나서야 허둥대는 것도 문제겠지만, 국내외 분위기에 비해 너무 앞질러 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안으로 여론수렴과 군사적 대비 등 대응태세를 갖추면서 밖으로는 언행의 완급을 치밀하게 조절해야 한다. 노무현(盧武鉉) 새 정부가 이 일을 다루는 자세에 따라 앞으로 한미관계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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