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파병 준비는 하되 나서지 말아야

  • 입력 2003년 2월 11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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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국회에서 김석수(金碩洙) 총리가 “미국의 대이라크전 파병 요청에 대비, 아프가니스탄 파병 범위 내에서 사전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다소 앞서 나간 발언이다. 아직 미국의 공식 요청도 없는 터에 총리가 그런 식으로 말한 것은 마치 한국의 지원을 당연시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이라크전을 지원하는 것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 판단할 일이다.

물론 미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동맹인 우리가 이를 외면하기는 어렵다. 요즘처럼 양국관계가 어수선할 때 미-이라크전에 적극 동참함으로써 한미동맹 체제를 새롭게 다지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젊은이들을 위험한 전쟁터로 보내는 일은 반드시 국회 동의 등 국내적 절차를 거쳐야 하는 사안이다. 총리의 말 한마디로 결정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미-이라크전을 둘러싼 국내외 여론도 고려해야 한다. 최근 독일 프랑스 러시아가 미국의 일방적인 군사행동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확인하는 등 반전(反戰)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고, 이라크는 유엔의 무기사찰에 적극 응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럴 때 에너지원 수입의 대부분을 중동지역에 의존하는 우리가 섣부르게 누구 편임을 자처하고 나서는 것이 얼마나 국익에 도움이 될지 생각해볼 일이다. 더욱이 지금은 한가롭게 해외파병을 논하기보다는 당장 ‘우리 발등의 불’인 북핵 문제에 전념해야 할 때가 아닌가.

정부의 현명한 처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가 아무 대책없이 있다가 미국의 요청을 받고 나서야 허둥대는 것도 문제겠지만, 국내외 분위기에 비해 너무 앞질러 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안으로 여론수렴과 군사적 대비 등 대응태세를 갖추면서 밖으로는 언행의 완급을 치밀하게 조절해야 한다. 노무현(盧武鉉) 새 정부가 이 일을 다루는 자세에 따라 앞으로 한미관계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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