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정민/한반도 미래가 걸린 선택

  • 입력 2002년 12월 18일 18시 21분


유세도 끝났고 선거전도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냉정한 선택뿐이다. 그러나 21세기의 첫번째 대통령 선거에 임하면서 많은 국민의 마음은 편치 않다. 뒤죽박죽을 거듭한 여론 동향, 끊이지 않은 공방과 비방, 그리고 득표만 의식한 각종 선심공약 등은 차분하게 선택할 여유를 제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는 건국 이후 가장 중요한 선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한민국의 미래, 나아가 한반도의 미래가 걸려 있는 중대한 선택이다.

▼휴전선이 갈라놓은 빛과 그림자▼

선택의 자유는 헌법에 포함된 기본권 중 가장 소중한 기본권이지만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약 100년 전 우리 국민은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했고, 그 결과는 참으로 암담했다. 8·15 광복 후 우리는 선택의 자유를 되찾았고 자유를 선택했다. 물론 ‘자유의 집’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많은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고 시행착오도 만만치 않았다. 되돌아볼 여유도 없이 우리는 앞으로만 돌진했다. 그리고 그 결과 역사적으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에 이르렀고 민주주의도 성취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세계 12번째 경제강국으로 번창했고 아시아의 용(龍)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나라로 발전했다.

자유를 선택한 나라와 자유를 선택하지 않은 나라의 실상은 바로 우리의 땅 한반도에서 확연하게 입증됐다. 인공위성으로 본 한반도의 야경(夜景)은 휴전선을 기점으로 낮과 밤으로 분명히 구분된다. 그렇다. 순간의 선택이 한민족의 미래를 분명히 좌우했다. 남은 과제는 한반도 전역에 빛과 희망과 소망을 안겨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구축한 ‘자유의 집’은 우리 스스로의 힘만으로 지킬 수 없다는 점이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이다.

13억 인구의 거대 중국,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인 일본, 지구촌에서 가장 광대한 영토를 지키고 있는 러시아, 그리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한반도의 이웃나라들이다. 따라서 강대국 틈바구니 속에서 생존전략을 꾀하고, 석유를 수입하고, 수출과 외자유치를 확대하고, 그리고 군사적 위협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붕이 필요한 것이다. 바로 지난 반세기 동안 한미동맹 관계가 이러한 지붕의 역할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한미관계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서울 광화문의 촛불 시위가 입증해주었듯이 이번 선거 기간에 많은 국민은 미국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미국이 과연 필요한가. 주한미군이 왜 주둔하고 있는가. 미국 때문에 남북대화가 동결되어 있지는 않는가. 충분히 물어볼 수 있는 문제들이지만 이제는 보다 냉정한 자세로 그 답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더욱더 균등한 한미관계를 구축하고 국민감정을 치유할 필요는 분명히 있지만 감정이 국가이익을 대체할 수는 없다.

많은 국민은 주한미군이 한국의 이익보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주둔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미국은 한국 내의 반미감정을 지켜보면서 주한미군을 줄이거나 필요할 경우 철수할 수도 있음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한국이 북한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을 계속 평가절하할 경우 미국이 더 이상 한국안보를 위해 할 일이 없다고 판단하게 될 것이다.

▼감정이 國益 대체할 순 없어▼

미국 행정부가 미묘한 시점에 이러한 의견을 직접 표출하지는 않고 있으나 이는 결코 워싱턴 전문가들만의 생각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한 이러한 미국의 시각이 이번 선거와는 무관하게 번지고 있다는 점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는 우리 국민은 이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 각각의 정치 철학, 희망하는 사회, 그리고 바람직한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것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이번 선택이 국가안보에 미치는 다양한 여파를 차분한 자세로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정민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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