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도청 파문]2년추적 리스트 증언 확보

  • 입력 2002년 11월 28일 19시 11분


동아일보가 국가정보원(국정원장 신건·辛建) 등 정보수사기관의 휴대전화 도·감청에 대해 관심을 갖고 취재를 시작한 것은 2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보 기획취재팀은 휴대전화 도청 여부가 뜨거운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2000년 5월부터 특별취재팀을 구성, 관련 업계 등을 상대로 물밑 취재에 들어갔다.

그 결과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을 도입한 휴대전화의 도청이 가능하며 이미 이스라엘 미국 등에서 휴대전화 도청 첨단장비가 시판되고 있다는 사실을 상당 부분 확인했다.

그러나 이 장비가 국내의 정보수사기관에 도입돼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던 중 올 들어 9월말 국정원의 한 관계자로부터 “국정원이 휴대전화 도청장비를 50대로 늘려 여의도 광화문 과천 등 정관재계 및 언론사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도청을 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그 후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의원이 “국정원 도청자료”라며 잇단 폭로를 한 것을 계기로 본보는 다시 특별취재팀을 구성, 보안업체 전문가와 전현직 국정원 관계자 등을 상대로 밀착취재에 들어갔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로부터는 “타깃(정관재계 및 언론계의 주요 도청대상자 명단)까지 작성해 놓고 있다”는 충격적인 증언을 들었다.

정보 업무를 담당하는 검찰 경찰의 관계자로부터도 국정원의 휴대전화 도·감청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언도 확보했다.

본보는 특별취재팀의 밀착취재 등을 바탕으로 10월25일자에 A1면 머리기사(‘국정원, 첨단장비 50대 투입, 요인 휴대전화 광범위 도청’)와 A3면(‘국정원 관계자가 폭로한 엿듣기 실태’) 관련기사를 작성해 단독 보도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측은 이례적으로 언론중재위 등을 거치지도 않고 10월25일 국정원 통신 기술 업무를 담당하는 곽모씨 등의 명의로 동아일보사(사장 김학준·金學俊)와 어경택(魚慶澤) 편집국장, 정동우(鄭東祐) 사회1부장 그리고 취재기자 3명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형사 고소를 했다. 이와 함께 법원에 1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냈다.

형사사건은 서울지검 형사2부(조근호·趙根皓 부장검사)에서 수사 중이며 주임 검사는 박민표(朴珉豹) 부부장 검사가 맡고 있다. 박 검사는 “최근 고소인 조사를 위해 국정원 직원들에게 소환 통보했으나 국정원측이 서면 진술서를 내겠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측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법적 대응에 나선 것과는 대조적으로 아직 고소인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한편 참여연대는 한나라당 정 의원의 폭로 등을 근거로 10월28일 국정원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으며 이 사건은 서울지검 공안2부(황교안·黃敎安 부장검사)가 수사 중이다. 검찰은 26일 참여연대 간부 한모씨를 고발인 자격으로 소환 조사했다.

민사소송은 언론전담 재판부인 서울지법 민사합의26부(주경진·周京振 부장판사)가 맡고있으나 아직 첫 재판기일도 잡히지 않는 상황이다.

한편 신 원장은 국회 정보위 등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이나 이스라엘 모사드 등 세계 어떤 나라의 정보수사기관도 휴대전화 감청능력은 갖고 있지 않다”면서 “도청 문제는 모든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는 문제로 국정원이 도청을 했다면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며, 도청설이 근거가 없다면 도청설을 주장한 사람도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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