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빚탕감제' 악용 소지 없어야

  • 입력 2002년 10월 30일 18시 43분


과도한 빚으로 파산의 위기에 몰린 사람에게 재생의 기회를 주는 것은 원칙적으로 옳다. 직장을 갖고 있는 봉급생활자나 자영업자로서 어느 정도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할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취지에서 5년 동안 최선을 다해 빚을 갚으면 나머지 빚을 탕감해 준다는 개인회생제도는 필요하지만 악용될 소지가 없도록 신중한 검토가 전제되어야 한다.

개인회생제도는 회사법정관리제도를 개인에 적용한 ‘개인법정관리’에 해당한다. 일할 의욕이 있고 재생 가능한 사람들을 구하는 목적에 한해 최소한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채무자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까지 과도하게 면책해 준다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빚을 갚지 않고 망할 때까지 버티는 게 유리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경우 신용불량자의 양산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길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회생제도가 남발될 경우 금융기관들이 대출을 회수하거나 신규대출을 꺼려 신용불량자가 양산될 수도 있다. 채권자들이 채무변제계획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법원이 인정할 경우 개인회생제도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한다지만 채권자의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된다.

이 제도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파산자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현행법상 파산선고를 받으면 직업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각종 자격제한이 심하다. 심지어는 전기공사업이나 소방관리사 등의 직업도 가질 수 없게 되어 있다. 개인회생절차가 개시된 채무자의 경우도 사실상 직업을 구할 수 없다면 회생제도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할 것이다.

현정권 들어 개인대출과 카드빚이 크게 늘어나 가구당 빚이 곧 3000만원에 이르고 신용불량자가 250만명에 달할 정도로 신용위기가 심각하다. 개인회생제도가 신용불량자를 무조건 구제해주는 조치로 인식되면 너도나도 먼저 빚을 얻고 나서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정부가 혹시라도 선심을 써서 신용불량자를 구할 생각이라면 신용사회의 정착은 요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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