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윤용만/삶의 비용

  • 입력 2002년 2월 16일 18시 06분


작년 9월11일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테러사건으로 선량한 미국인 3000여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다.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고 테러 주범으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을 생포하기 위해 1000억달러 이상을 아프가니스탄에 쏟아 부었다. 한편 테러가 발생한 바로 그 날 지구상에서는 3만5000여명의 어린이들이 기아로 사망했으며 오늘도 비슷한 수의 어린이들이 굶주림에 죽어가고 있다. 전쟁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풀로 만든 개떡 비슷한 것을 먹으며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 지역뿐만 아니라 지구상 곳곳에서 10억명이 넘는 인구가 하루에 1달러어치도 안 되는 양식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안전한 물을 마시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수확한 곡물의 80%를 가축의 사료로 사용하고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1998년 기준으로 90억달러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깨끗한 물과 하수시설을 제공할 수 있고, 충분한 영양과 기초 건강관리를 제공하려면 130억달러면 가능하다고 추산했다. UNDP는 또 60억달러면 모든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모두 합해 대략 300억달러면 지구촌의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액수는 2001년 10월 미국 정부가 신형 F35폭격기를 사기 위해 록히드사에 지불하기로 한 2000억달러의 6분의 1도 되지 않는 금액이다. 올해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들어간 1000억달러 외에 국방비로 3800억달러가 넘는 돈을 지출할 예정이다. 이 비용의 일부라도 인간의 고통을 줄이는 일에 사용하면 얼마나 좋을까.

▷미국의 환경운동가 존 라빈스는 위에서 열거한 지구상의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해 미국인으로는보기 드물게 미국의 외교·군사·통상정책을비난한다. 그는 최근 ‘어스세이브인터내셔널(EarthSave International)’ 웹사이트에 발표한 논문에서 미국인은 세계 다른 지역 사람들의 행복과 밀접한 상호의존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1’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한 배스킨라빈스 설립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가업을 잇지 않고 건강하고 균형있는 생태계 건설을 위해 평생을 바친 양식있는 미국인이다.

윤용만 객원논설위원 인천대 교수·경제학 ymyoon@inche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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