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재계 CEO '입 단속령'…"증권집단訴 빌미될라"

  • 입력 2001년 12월 20일 18시 47분


재계에 증권집단소송 ‘비상 경계령’이 떨어졌다.

내년 4월부터 자산 2조원이 넘는 거래소 상장기업과 코스닥등록 회사들은 증권집단소송 대상이 돼 자칫 잘못하면 투자자들의 소송에 휘말릴 공산이 커졌다.

각 기업들은 특히 그동안 관행적으로 해오던 최고경영자(CEO)의 기업설명회(IR) 활동에까지 집단소송 불똥이 튀지 않을까 우려한다. 이 때문에 이제 대기업 IR 현장에서 CEO를 보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 LG 등 주요 대기업은 증권집단소송제도가 실시되면 CEO나 재무책임자(CFO)의 IR활동이 움츠러들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 IR과정에서 자연스레 거론될 매출규모와 예상이익, 향후 사업계획 등이 발표와 달리 나중에 결과적으로 틀릴 경우 책임문제를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

삼성 관계자는 “CEO들이 IR를 하면서 회사경영에 뚜렷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을 말하기를 아주 꺼리게 될 것”이라며 “일부에서는 CEO가 공개석상에 나서는 것 자체를 기피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 대기업은 집단소송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CEO들에게 IR 활동지침 등 매뉴얼을 만들어 사전에 ‘입단속’을 하는 등 미리부터 대응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또 자문변호사나 컨설팅회사 법률전문가 등을 통해 집단소송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 부분에 대해 수시로 사전조언을 듣는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LG 관계자는 “그동안 코스닥 등 일부 기업들은 IR를 하면서 주가를 올리려는 의도가 많았다”며 “앞으로는 CEO 한마디의 책임이 더욱 무거워지므로 있는 사실을 거품없이 그대로 전달하는 쪽으로 IR관행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령 기업들이 기술개발을 통한 원가절감 노력을 하거나 적자사업을 떼내는 사업구조조정 방향 등을 발표할 때도 무엇보다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조심스레 예측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부는 대기업들이 집단소송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을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도입초기에는 기업들이 증권거래소에 수시로 공시하는 내용은 집단소송 대상에 넣지 않았다”며 “기업이나 회계법인이 사업보고서를 사실과 다르게 만들어 투자자에게 피해를 줄 경우에 한해 집단소송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IR 과정에서 발표한 내용이 설령 나중에 사실과 달랐다 해도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한 것이 아니라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제도 시행초기에 ‘시범 케이스’에 걸리지 않으려는 대기업들은 CEO나 임원들에게 투자자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령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최영해기자>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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