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역사가들 자신의 역사 '나는 왜 역사가가 되었나'

입력 2001-10-05 18:55수정 2009-09-19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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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을 미세한 부분까지 들춰내는 역사가는 막상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공개하는 데는 소극적이다. 왜일까. 이는 한 마디로 ‘거리둠’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가는 자신을 소거한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되도록 훈련받는다. 주관의 개입에 대한 금욕적인 경계심이야말로 진실된 과거사의 서술을 위한 제일의 조건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개인사를 ‘분노나 정열 없이’ 묘사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기록과정에서 기억의 불완전성과 시대착오적인 오류(성인이 되어서야 체험한 일을 마치 어린 시절에 이미 겪은 것처럼 묘사하는), 그리고 본능적인 자기애(자신에게 근사한 역할을 부여하는) 등의 문제점이 드러난다는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역사가가 역사가로서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자신의 여정을 내면에 묻어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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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이 책은 특기할 만한 작품이다. 모리스 아귈롱, 피에르 쇼뉘, 조르주 뒤비, 라울 지라르데, 자크 르 고프, 미셸 페로, 그리고 르네 레몽이라는 일급의 역사가들이 자서전의 이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고, “종합적이고도 설명적인 냉철한 시선으로 그들 자신을 보면서, 나름대로의 고유한 문체와 방법론으로 자기 개인사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공의 비결은 무엇인가. 이는 “개인의 역사와 이보다 더 폭넓은 집단 역사의 유기적 결합”을 이루어냈기 때문인데, 저자들은 자신이 역사가로 만들어지는 복잡한 과정과 다양한 층위를 그 시대의 사상적 정치적 경제적 풍토와의 연관성 속에서 서술하고 있다.

독자가 이 책을 통해 각 역사가의 고유한 역사관과 독특한 심성 등은 물론 1900년 이래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프랑스에 대한 지식을 얻어낼 수 있음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하여 독자는 드레퓌스 사건,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알제리 전쟁, 1968년 학생운동 등의 역사적 사건들이 저자들을 포함한 프랑스인들에게 어떤 상흔을 남겼는가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아귈롱의 ‘공화국’ 연구욕, 죽음과 망각으로부터 과거의 삶을 구출해 내려는 쇼뉘의 열망,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는 장기지속의 역사에 대한 르 고프의 관심, 좌파적이면서도 기독교적인 투사 정신에 입각한 페로의 노동사, 이념 사상 종교 정치를 네 개의 축으로 삼는 레몽의 역사관 등이야말로 이러한 흔적의 구체적인 증거가 아닌가.

역사가는 좀더 인간적인 삶의 도래를 위해 과거로 여행한다. 이 책은 따지고 보면 갈등과 대립의 간극을 넘어서기 위해 “사어(死語)의 미궁”속으로 빠져든 프랑스 역사가들의 진솔한 자화상이다. 방투산에 오른 페트라르카의 손에 오거스틴의 ‘참회록’이 쥐어졌듯이, 공존의 근거를 찾기 위해 과거로 떠나는 이들의 손에 프랑스 역사가들의 고백록이 놓여있었으면 좋겠다. 가을의 각성은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김현식(한양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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