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손에 잡히지 않는 신화 '신화학의 창조'

  • 입력 2001년 10월 5일 18시 55분


신화는 아마도 인류의 삶의 시작과 함께 존재해 왔으며, 인간 삶의 종말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리스에서는 기원 전 5-6 세기 경부터 인류와 생사를 같이 하며 그 삶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신화를 '야만적이고 황당무계한 이야기', '파렴치하고 무도한 이야기', '상식을 벗어난 기이한 이야기'로 취급하면서 문화의 영역 밖으로 추방하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신화는, 오늘날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엽기적인' 이라는 수식어가 줄곧 그 곁을 따라 다니며, 배제되어야 할 '야만'으로 간주된다. 인도-유럽어에 대한 관심이 비등하던 19세기 말, 한편으로는 역사·문헌학의 전통 속에서 고대 문명 사회의 신화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민속학자, 인류학자들이 채록한 무문자 사회의 이른바 원시신화들을 대량으로 접하면서, 신화를 보는 시각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다. 신화는 동물성의 인간정신의 산물이 아니라, 가장 내밀하고 자유분방한 인간정신활동의 산물이 아닐까라는 새로운 자각. 이렇게 해서 문화적 실재로서의 변별적 특징을 파악하고, 신화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독특한 정신을 이해하려는 시도인 학문이 '비교신화학'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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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적 신화 연구는 겉으로 보기에 가장 자의적이고 비논리적이며 무질서한 듯이 보이는 신화들도 그 심층에서는 어떤 논리가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다시 말해서 신화언어의 문법을 밝혀냄으로써, 신화학의 도정은 그 절정에 달한다.

마르셀 데띠엔느는 구조주의 물결이 휩쓴지 20년이 지난 1980년 대에, '이제는 신화학에 대해, 또 신화에 관한 담론들에 대해 전체적으로 숙고해 볼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다. 이번에 우리말로 번역·소개되는 그의 저서『신화학의 창조』는 이러한 판단의 결과물로서, 여기서 그는 신화학자들의 이론적 작업들과 기원전 5-6세기 이래로 이루어졌던 신화에 관한 담론들을 총체적으로 점검한다.

데띠엔느는 18세기의 라피또와 퐁뜨넬의 저서에서 이미 신화학의 두 선구자 막스 뮐러와 타일러의 신화관과의 유사성을 간파하고는 이들이 지적하는 신화의 특성을 언급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신화학자들과 크세노파네스와 플라톤을 위시해서 몇몇 그리스 역사가나 철학자들이 말하는 신화의 면모들, 그리고 그들이 열어놓았던 새로운 의미 지평을 규명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데띠엔느는 이들의 담론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문명/야만, 종교/신화, 역사/신화, 과학/신화, 철학/신화 등의 다양한 편가르기를 간파하고, 그들이 명시적으로 또 때로는 암묵적으로 기대고 있는 인식의 도그마를 해체한다.

데띠엔느가 보기에, 이 인식의 도그마들은 늘 '철학적 합리성'을 기준으로 해서 그 경계선이 그어지면서 한편을 배제하기는 하지만, 이들은 신화를, 때로는 입으로 말해진 전통 쪽으로, 때로는 글로 쓰여진 전통 쪽으로, 또 때로는 그 경계선상에, 또 경우에 따라서는 이 경계선 양쪽을 다 넘나드는 곳에 위치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경계선은 명확히 우리에게 드러나지 않고 늘 모호해 보인다.

오늘날 가장 생명력 넘치는 자발적인 원초적 본능의 표상들을 사람들은 신화라 부르기도 하지만, 반면 가장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억압적 이데올로기 또한 신화라 부르는 사실에서도 우리는 이 경계선의 모호함을 재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가장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는 신화언어에서 논리를 파악해냈다는 위대한 신화학자마저도 신화학의 연구 대상인 신화를 정의하지 못한채, 단지 사람들이 신화라 부르는 것은 모두 신화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우리가 스스로 어떤 기준을 설정해서 또 다른 편가르기를 하지 않고 기존의 신화담론들을 통해 신화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려한다면, 신화는 실체가 모호한,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 않는 신기루이다. 하여 데띠엔느는 신화를 물 속에서 용해되는 물고기에 비유한다.

우리가 신화라 부르는, 신화학의 연구 대상인 문화적 실재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 위해 포착하려고 애를 쓰면 신화는 물 속에서 용해되어 우리는 곳곳에서 그 향과 맛을 감지하게 되며, 사람들은 그것들을 모두 신화라고 불러왔으며, 지금도 그렇게 부른다. 분명히 있으나 찾으려하면 물 속에 용해되어 찾을 수 없게 되는 신화. 데띠엔느가 무수한 신화적 담론들을 점검하며 도달한 결론은 바로 이것이다. 여기에다 그는 한가지 사실을 더 지적한다. 세계 어느 지역의 신화를 연구하건 어떤 학자가 신화의 속성들을, 또는 신화적 사고의 특성들을 규명하기 위해 세우는 경계선은 이미 기원전 5-6세기 이래로 그리스 역사가들이나 철학자들이 그었던 수많은 경계선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이 특성들은 바로 그리스 신화의 어떤 특성들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신화적 담론들을 검토해 보면, 그리스가 바로 신화적 사고의 본향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신화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언제나 그리스어를 말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그리스에서부터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글의 마지막 부분에 '새로운 이론가를 기다리며'라는 그의 바램은 바로 그리스적 특성이 아닌 어떤 신화적 특성을 누군가가 규명해줄 것을 기다리지만, 그는 '기다리는 고도'는 결코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음을 암시하기에, 또 오늘날 한국 사회를 휘감는 그리스 신화 열풍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기에, 그의 말이 마치 예언처럼 들려 약간은 우울해진다. 그러나 데띠엔느의 한 저서가 우리말로 번역되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르셀 데띠엔느는 1980년 대와 90년 대에 유럽 각국의 젊은 그리스 신화연구자들이 빠리의 종교학고등연구원으로 모여들어 앞다투어 그의 지도를 받고자 애를 썼던 탁월한 신화학자, 현재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 신화연구자들 중 거장의 반열에 드는 프랑스인 신화학자이다. 그는 신화를 연구할 때건, 신화학자들의 이론을 탐구할 때건, 일차자료를 직접 읽고 작업하는 신화학자다. 현재 국내에 소개되어 있는 신화관련 서적들 대다수는 2차, 3차, 때로는 그 이상의 손길을 거친 자료들을 저자나 편집자가 또다시 재구성한 것들이다.

숱한 굴절을 거친 이러한 책들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신화 이해나 특정 면만이 부각된 편파적인 신화 이해를 초래할 위험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독자들이 신화의 총체적인 모습을 최소한의 굴절을 통해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저서를 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그러나 동시에 우려도 뒤따른다. 우리에게는 아직 낯설기만한 방대한 자료들을 두루 섭렵하는 문헌학적 박학함, 실체들을 통찰하는 지적 명철함, 거기다 자신의 언어를 구사하는 자유로운 문학적 필치까지 가미된 그의 저서는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학설사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독자는 그 어려움이 배가될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조급해 하지 않고 깊이 생각하며 천천히 읽어 나간다면, 『신화학의 창조』는 엄청난 양의 믿을만한 지식들을 전해주며 그 독자들의 노고에 진정 10배로 보답해주리라 확신한다.

김현자(서울대 종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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