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스타매력탐구:인생을 영화처럼 산 김지미의 당당함

  • 입력 2001년 5월 15일 19시 19분


소문난 애처가. 더할나위 없이 좋은 아버지, 어디를 가나 가족에게 하루 한 두번은 전화를 하고, 물론 단 한번도 불미스런(?) 스캔들을 뿌린 적이 없는 모범가장-배우 안 모씨나 그를 닮은 일본배우 야큐쇼 코지 등이 지닌 이미지이고 생활이다.

그들의 반듯한 사생활을 칭찬하는 기사를 보면 지겹고 짜증난다. "배우 맞아?"하고 묻고싶다. 나는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의 팬이 될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다.

배우에게 평범함은 독약이다. 스캔들 한번 제대로 뿌리지 못한 배우가 무슨 배우인가? 남이 못하는 인생을 살아야 배우이고 남이 뿌리치지 못한 생활을 털고 일어나야 배우이다. 체험을 넘어선 상상력으로 꾸민 연기는 궁극적으로는 헛것이며 공허하기 이를데 없다.

작가 마르시아스 심이 정혜선을 존경하듯, 나는 김지미를 존경한다. 김지미는 김지미의 인생을 ‘배우’로서, 김지미식으로, 마음대로 살았기 때문이다.

젊은 남자와 충동적인(?) 만남도 있었고 나이 든 남자와 따스한 사랑도 했다. 속좁은 세상 사람들이 찧고 까불러도 ‘개는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식으로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하고 싶은대로 하며 살았다. 얼마나 멋진가? 그리고 보통 여자들이 감히 실행은 못하나 솔직히 얼마나 바라던 일이었지 않은가?

세상의 규격에 맞춰 산다면 그는 배우가 아니다. 나는 김지미가 규격을 팍팍 깨며 세상을 때로는 경멸하며 ‘엽기 여우’처럼 과감하게, 용감하게 산 인생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배우란 일상을 벗어나야 한다.

단 한편의 영화를 보고 롯셀리니에게 "사랑한다"는 러브레터를 보내고 이탈리아로 달려간 잉그리드 버그만, 남들은 한 번 해도 지겨운 결혼은 7번씩이나 끝없이 해대는 리즈 테일러, 아버지가 다른 아이를 5명은 낳고 싶다고 기자에게 말한 마돈나-이런 피가 끓는 여자들만이 배우이다. 김지미는 진짜 배우이다.

엄정화의 <눈동자> 가사 그대로 오랫동안 김지미를 지켜본 나는 요즘 다시 그녀에게 감탄한다. ‘졌다’하는 심정으로….

김지미가 나오는 모 보험회사의 광고, 많은 이들은 소란스러웠다. "아유! 김지미도 늙네" "아유-어떻게 성형수술이라도 하지, 주름이 굉장합디다" "나같으면 억을 줘도 그렇게 이상하게 찍는 광고에 안나갈텐데."…. 평범한 이웃 아줌마들은 안타까워하며 말한다.

하지만 그 광고를 보니 김지미는 과연 김지미였다. 이제 그녀는 우리에게 주름살의 관록을 당당히 보여준다.

여배우의 주름살이 더 이상 초라하지 않음을, 의사가 하는 비싼 ‘다림질’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더 나아가 배우 김지미는 ‘나의 주름살은 김지미가 어떻게 일을 했고, 남자를 만났고, 아이를 키웠고, 웃고 울고 발버둥쳐왔는가의 당당한 표시’라는 점을 광고하고 있다. 성형수술에 기대지 않았고, 남자에 기대지 않았고, 세상의 가치관에 기대지 않았고, 젊음에 기대지 않았던 배우 김지미-이제 "나는 늙었다"고 당당히 선언하는 그녀를 어찌 한 여성으로서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여옥(방송인·㈜인류문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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